어향가지의 미학
만약 가지, 감자, 고기 중 하나를 먹어야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무엇을 선택할까? 가지를 선택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향가지는 감자로 만든 요리, 고기로 만든 요리가 있어도 기꺼운 마음으로 시키게 되는 요리이다.
이것이 어향가지의 미학이다. 사람들은 가지의 흐물흐물한 식감을 안 좋아하는데 그 식감이 있어 어향가지라는 요리가 있을 수 있다. 고온의 기름에 튀겨도 가지의 흐물흐물한 식감은 변하지 않기에 아름다운 겉바속촉 식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
가지는 어떻게 어향가지가 되었을까? 먼저 자신이 감자, 고기가 아니라는 고통스러운 사실을 받아들였어야 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주 어렵게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태생적 한계에 무력감을 느끼며 삶의 의지가 꺾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아주 가끔 몇몇 사람은 어향가지가 된다. 가지라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되 체념하지 않고 가지만이 갈 수 있는 새로운 운명을 개척해낸다. 이러한 개척자들은 어향가지만큼이나 확실하고 뚜렷한 자신만의 맛과 향을 뿜어내게 된다.
영화 <머니볼>은 어향가지의 이야기이다. 영화에 나오는 오클랜드는 바로 어향가지의 팀이다. 다른 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오클랜드만의 맛과 향이 뚜렷하게 있다. 이 오클랜드의 맛과 향은 그들이 뉴욕 양키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임으로써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빌리 빈 단장이 기존의 방식대로 선수를 평가하고 영입하려는 모습을 보고 화를 내며 "뉴욕 양키스의 방식대로는 뉴욕 양키스를 이길 수 없다."라고 선언하는 바로 그 순간 오클랜드는 어향가지의 길을 걷게 된다.
고기, 감자가 맛있어지기는 쉽다. 하지만 가지가 맛있어지기는 쉽지 않다. 어향가지는 그런 쉽지 않은 일을 해낸 위대한 요리이다. 종종 정말 탁월한 사람을 보며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에 주눅이 들고 위축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어향가지라는 위대한 음식을 떠올린다. 난 가지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천재가 아니기에 어향가지 같은 위대한 음식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스스로에게 힘을 불어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