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보빙사

모던 보빙사 EP9 - man vs nature

버드나무맨 2023. 10. 9. 09:18

DIY

- 요세미티 가는 길 입구에서 산 샌드위치를 먹다가 미국 사회, 문화의 특징을 꿰뚫는 말이 떠올랐다. DIY이다.

- 이 단어가 샌드위치를 먹다가 갑자기 떠오른 이유는 계산할 때 점원이 마요네즈나 케첩이 필요한지 물어봤고 샌드위치에도 포장이 된 작은 머스타드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와서 햄버거나 샌드위치를 먹을 때 자주 볼 수 있던 모습 중 하나가 빵을 들어올려 안에 케첩이나 머스타드를 더 뿌리고 먹는 모습이었다. 주는대로 먹던 한국에서의 문화가 익숙한 나에게 뚜껑을 열었다 다시 덮는 모습은 완성된 요리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모습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 모습이 지난 글 At your own risk와 오뚜기 카레를 관통하는 키워드, DIY를 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 이전에 언급한 In-N-Out, 스타벅스의 시크릿메뉴를 비롯해 미국 식당에서 제공되는 수많은 퍼스널 옵션들(매번 물어봐서 대답하기 귀찮다)이 이런 예중에 하나이다.  DIY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생각이 난 모습은 한 직장 동료와 Five Guys를 갔을 때였다. 디스펜스에 가더니 본인의 레모네이드 레시피라며 사이다에 레모네이드에 뭐 이것저것 섞어서 따른다. 나에게 비슷한 경험은 초등학교 다닐 때쯤 감자탕 먹으러가서 어른들 대화길어지니까 심심해서 환타랑 콜라 이것저것 섞다가 혼나게 마지막인 것 같다.  그 뒤로 그렇게 마셔본 적이 없는데 여기서는 다 큰 어른들도 그렇게 마시고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요세미티의 바위를 올라가 장난치는 아이들이나 풀숲에서 사진기를 들고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 아저씨나 다 DIY이다.

- DIY는 애새키스러움이 전제되어야지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크다보면 그 사회에서 요구하는 표준화된 절차와 행동양식을 따르게 된다. DIY를 추구하는다는 것은 이러한 편리함 거부하고 굳이굳이 자신의 취향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니,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회의 때를 타지 않고"서는 쉽지 않다. 귀찮고 번거로워서 모든 것이 새로운, 그 시기를 지나고서는 보통의 호기심으로는 잘 시도하지 않는다. 

- 내가 미국에 와서 너무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는 이유는 바로 이 DIY의 정서가 나와 잘 맞기 때문인 것 같다. 이것저것 좋아하는게 많고 세상만사가 궁금한 나로서는 이 DIY를 하는 과정이 너무나 즐겁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내 삶을 통제하고 있다는 자기효능감도 함께 올라간다. 나만의 무엇을 갖게 되는 느낌. 사업을 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도 이런 나만의 무엇을 갖고 싶었기 때문인데 이곳에서는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나만의 무엇을 만들고 구축해가다보니 세상살이가 훨씬 재밌다. 

- 말했듯이 DIY는 훨씬 번거롭고 귀찮다. 예를 들어, 자동차 보험만해도 한국에서보다 훨씬 많은 선택지가 있고 보험간 가격이나 보장의 차이도 한국보다 훨씬 크다. 그래서 어떤 보험을 가입할지, 그리고 가입한 상태에서도 더 저렴한 가격에 제공되는 보험이 있는지 직접 찾아봐야한다. 아니면 이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이 아까우니 조금 더 비싸더라도 고민없는 유명한 보험사를 고르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무엇이든 나의 선택이고 나의 책임이다. 보통 미국에 와서 자동차 보험을 고를 때 대부분 네이버에서 검색해 유명한 보험사를 선택하지만 나는 그냥 정말 이 동네의 작은 보험사에 연락해봤다. 당장 차를 운전하기 위해 급하게 보험이 필요했는데 전화해서 사정을 설명하고 애걸복걸하니 보험에 들 수 있었다. 물론 그 뒤에 더 싸고 저렴한 보험이 있어 옮겨가긴했지만. 

- 회사에서 매번 Amazon에 접속해 로그인하는게 귀찮아 쉽게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찾아보면 액세스 포인트를 제공해 구글 데이터스튜디오에서 훨씬 쉽게 볼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가 있다. 그래서 도입해서 매번 번거롭게 로그인하지 않고 연동해서 쓰고 있다. 한국에서처럼 연동할 때 어떤 것은 안 되고 이런게 아니라 그냥 돈만 내면 싹 다 연동이 되어서 아주아주 편리하다. 그 외에도 여기서는 API를 연결하거나 외부툴을 사용할 수 있게 너무 잘 되어 있어서 적극적으로 끌어다쓰며 삶의 효율을 높여가고 있다. 미국의 인디해커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렇게 뚝딱뚝딱하면 되니까 재미있다. 

- 이 느낌을 비유하자면 한국에서는 나무를 구하기 어려운데 여기서는 나무를 구하기 쉽다. 무슨 말이냐면, 예전에 내가 아주 작은 목조 조형물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적당한 목재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알파문구나 공구점을 가도 이런 나무를 잘 팔지 않고 목공소에서도 목공 프로그램에 맞는 목재들만 구비되어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동네마트만 가도 상품의 다양성에 놀라고, Home Depot같은 곳을 들러보면 정말 별별 상황에 쓰일 수 있는 신기한 도구들이 잔뜩 있다. 그러니 무언가를 만들기만 하면 된다. 그 앞 준비과정에의 번거로움이 훨씬 적으니. 흔히들 우리가 인프라를 이야기하면 다리, 도로, 철도 등을 생각하는데 인프라는 토목과 같은 단어가 아닌 것 같다. 개인이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한 사회문화적 기반 전부를 통칭할 수 있는 단어라 생각하고 (혹시 제가 모르는 더 좋은 단어가 있다면 알려주십쇼) 그 점에서 미국은 강대국으로서의 인프라를 확실히 보유하고 있다. 

- 이러한 점에서 한국은 정보 인프라에 몰빵된 기형적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정보 인프라를 기반으로 네이버 카페나 디씨인사이드 같은 커뮤니티에서 DIY 문화 비슷한 것이 퍼져나가는 것 같다. 논란이 있었던걸로 알지만 최근에 Youtube에서 본 서양검술협회같은 곳이 그 예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정보화 시대에 정보 인프라는 많은 다른 인프라를 극복하게 해주는 것 같다. 비유하자면 원피스의 고무고무 열매같은 느낌? 그래서 한국은 세계 각국의 좋은 것들을 빠르게 수용하고 유행시키는데 능한 것 같고 이게 한국의 강점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Youtube, Netflix 등 콘텐츠 시장에서의 한국의 약진을 보면 이런 생각이 더욱 확실해진다. 이런 한국인들에게 정보 인프라 외에 다른 인프라까지 주어지면 훨씬 큰 임팩트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이것이 미국에서의 생활이 나에게 갖는 의미이다. 이곳의 인프라를 잘 레버리지 삼아 큰 임팩트를 만들어보고 싶다. 

 

내가 본 DIY의 사례

- Alltrails

하이킹할만한 곳의 정보가 모여있고 하이킹 좋아하는 사람끼리 평가와 리뷰를 남기는 커뮤니티. 미국에서는 이런 서비스들이 정말 많고 이런 곳의 정보들이 구글, Yelp같은 큰 업체의 정보보다 훨씬 좋다. 한국에서처럼 네이버에서 검색해서 네이버 블로그 보는 문화와는 확실히 다르다. 물론 Reddit에 웬만한 것들이 다 있긴하지만 이렇게 아예 Vertical을 따로 떼어내도 잘 된다. 

 

AllTrails: Trail Guides & Maps for Hiking, Camping, and Running

Search over 400,000 trails with trail info, maps, detailed reviews, and photos curated by millions of hikers, campers, and nature lovers like you.

www.alltrails.com

 

- Swimmersguide

수영장 정보를 다 모아놓은 사이트. 위에 사이트와 비슷한 컨셉인데 구글 맵으로는 찾을 수 없는 수영장의 디테일한 정보들이 아주 잘 모여있다. 이런 사이트를 알게 되면 미국에서 수영하기 정말 좋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고 모른 채 구글맵만 찾으면 24Fitness에는 항상 사람이 많아요같은 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Swimmers Guide The World-wide Pool Directory

 

www.swimmersguide.com

 

요세미티

요세미티 이야기는 안하고 샌드위치 얘기부터 먼저하게 되었는데 요세미티 다녀온 후기도 있다. 사실 지난 주에 가려고 했는데 늦잠을 자서 못갔다. 이번에 새벽 3시에 일어나 꼬박 6시간 운전해서 요세미티를 방문했는데 정말 너무 좋았다. 터널뷰, 요세미티 폭포, 글래시어 포인트같은 유명한 곳들도 좋았는데 특히 좋았던 것은 중간중간에 있는 이름없는 공간들이었다. 사실 나의 여행 스타일은 엄청 계획적인 스타일로 이 곳에서 해봐야한다는 것은 다 해보는 계획을 짜는 식이었는데 미국에 와서 바뀌었다. 그 이유는 미국에서는 이곳에서 살며 여행을 하는 것이다보니 정해진 기간 안에 다 봐야한다는 조급함없이 안 되면 다음에 또 오면 된다는 생각으로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여행 스타일의 변화가 불러온 변화가 정말 큰데 그래서 사람들이 말하는 유명한 스팟보다는 내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그냥 가서 드러눕고 쉰다. 요세미티는 그런 곳들이 너무 많아서 중간중간 계속 차를 멈춰 세웠다. (그래서 혼자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제일 좋았던 곳은 요세미티 폭포 가는 길 앞에 넓게 펼쳐진 덤불 평야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갖지 않는 평범한 곳이었다. 이 곳을 지긋이 바라보는데 내가 죽은 것만 같았다. 이 느낌이 글로 표현하기 참 힘든데, 하늘에서 그대로 내리쬐는 싱싱한 햇살, 세상을 휘감는듯한 산, 덤불을 스쳐 전달되는 바람 등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며 죽으면 갈 곳이 이런 모습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터무니없는 비약이고 상상임을 알지만 압도적인 자연 앞에서 느껴지는 비현실적인 감각들은 사후세계를 상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요세미티 강 근처로 내려가 하염없이 강물을 바라봤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기시감이 들었다. 강가에 앉아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하다 유년기에 본 어떤 동화책이 생각났다. 그 동화책에서 묘사되던 산이 지금 이 산과 비슷했다.

최근에 어떤 경험으로 인해 나의 정체성의 한 축을 발견했다. 바로 "꾸러기"였다. 도대체 꾸러기가 어떻게 나의 정체성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추척해보면 어렸을 때 봤던 <꾸러기 수비대>라는 만화가 있다. 지금은 내용조차 기억이 안 나지만 분명한 점은 내가 이 만화를 매우 좋아했다는 사실이다. 그 때 "꾸러기"라는 단어의 뜻을 주변 어른에게 물어보고 꾸러기의 유쾌하고 즐거운 삶의 태도를 받아들이게 된 순간이 떠올랐다. 동시에 꾸러기 수비대의 활약상을 보며 세상을 수호하는 수비대가 되어야겠다는 사명감도 함께 갖게 되었던 것 같다. 

 

요세미티의 기시감 역시 이런 경험과 비슷했다. 내가 어렸을 때 본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어떤 동화책에 나오는 풀숲, 강가, 산의 모습이 이러했다. 그 모습에 끌려 부모님과 등산을 하면 알 수 없는 괴리감이 느껴졌다. 내가 갔던 부천의 춘덕산에는 강과 호수대신 손두부집이 있었다. 어린 시절의 괴리감, 그리고 요세미티에서 느낀 기시감을 느끼니 문화 권력의 힘이 느껴졌다. 대자연을 둘러싸고 이런 사회가 어떻고 문화가 어떻고 하는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참 우습지만 내게 굉장히 의미있는 발견이고 자아성찰이었다. 내가 본 동화책과 같은 콘텐츠는 내가 인지하지도 못한 채 내가 사는 땅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반대로 미국인들은 얼마나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처럼 느끼며 살아갔을까?

 

여기서 논의를 마치고 "우리 것이 제일이여!"로 결론 내리면 시대에 뒤쳐진 국뽕에 그친다. 국가 혹은 국적은 정체성을 구성하는 여러가지 요소 중 하나일 뿐이고, 사람들에게는 각자 다양한 정체성이 부여된다. 문화에서는 이러한 정체성이 동일한 비중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삼국지를 보며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것이다. 아마 한국인보다 중국인 중에 더 많을 것이고, 여성보다 남성에서 그 비중이 더 많을 것이다. 만약 삼국지가 국정 교과서로 채택한다면, 누군가는 깊게 이입하여 주인공이 된 기분으로 살겠지만 누군가는 내가 동화책을 보며 느꼈던 괴리감을 안고 살아갈 밖에 없지 않을까? 다행히 나에게는 그 동화책을 공유하는 비교의 대상이 없었지만 비교할 대상이 있다면 그 괴리감은 이내 곧 소외감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정체성을 포용하려는 시도는 굳이 PC함을 추구하고 윤리적이고 뭐 어쩌고 하는 것이 아니라 뽀로로를 보고 밥을 안 먹고 쿠키를 찾는다는 부모님의 항의나 "우리 것이 제일이여!"와 같은 우리가 과거에 보였던 반응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세상에 그 무엇도 중립적이지 않다. 심지어 동화책조차도. 이것이 내가 요세미티의 강물을 바라모며 얻은 깨달음이다. 

 

요세미티를 혹시 방문하게 된다면, 요세미티는 등산이 아니라 드라이브에 가깝다. 요세미티 입구에서 요세미티 관광지까지도 차로 40분 정도 걸리고 각 관광지에서 다른 관광지로 이동할 때도 40~50분 정도 걸린다. 중간에 주차를 하고 트레일 코스를 가는 식으로 탐방이 이뤄지는데 주차자리를 찾는게 정말 어렵다. 

 

그리고 시장경제의 국가 미국에서는 관광지에 있는 가게에서는 얼마나 비싸게 팔까 염려했는데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 Diet Pepsi가 $1.3정도했고 그 밖에도 꽤 합리적인 가격이었다. 관련이 있는 줄 모르겠지만 미국 Public Sector의 좋은 예가 이런 국립공원 사무소이고 안 좋은 예가 DMV인 것 같다. 국립공원에서의 경험은 항상 탁월하다. 그래서 다른 미국 사람말로는 정부 셧다운되었을 때의 영향이 엄청 크게 느껴지는 곳 중 하나라고 한다. 

 

요세미티 근처(인줄 알았으나 1시간 30분이 걸렸던)에 가장 싼 숙소를 골랐다. 가는 길에 진짜 하나도 앞이 안 보였다. 매너고 뭐고 살기 이위해 상향등을 켜야한다. 지나가는데 호수가 있는데 진짜 여기서 죽어도 아무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간담이 서늘했다. 가는데 갑자기 사슴이 튀어나와 깜짝 놀라는 등의 우여곡절을 거쳐 잘 도착했다. (에어비앤비에 한글로 이름이 등록되어 있어서 한글 이름이 적혀있는데 굉장히 또박또박 잘 쓰셨다..ㅋㅋ)

호스텔이었는데 노잼처럼 보이는 할아버지가 알고보니 샌프란시스코 테크 기업에서 일하고 코칭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서 코칭을 주제로 신나게 이야기했다. 같이 자리에 있던 다른 분도 베이 지역에서 일하는 사람이었고 실리콘밸리의 스테레오타입 인도계 엔지니어도 있었다. 내가 신나서 이것저것 이야기하니 뭔가 다른게 느껴졌는지 호기심에 가득차 너 대체 무슨 일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본다. 여기서도 나는 뭔가 다르고 특별하다. 그래서 아주 자신이 있다. 숙소 밖에는 별이 쏟아질 것처럼 많이 있었다.

 

차가 막힐까봐 아침 일찍 나오는데 어제는 그렇게 무서웠던 도로가 너무 아름답다. 텔레토비에 나오는 것 같은 언덕들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로 해가 떠오르는데 정말 넋을 놓고 그 광경을 보게 된다. 사실 올 때도 넓게 펼쳐진 포도밭과 언덕들이 너무 아름다워 다음에 요세미티 올 때는 여기서 하루를 잡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그런 곳이었는데 어젯밤에는 그렇게 두려워 벌벌 떨었던 것이다.

 

Highway 41

원효대사의 깨달음이 생각나며 다시 한 번 자연은 선도 악도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다만 자연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필연적으로 다른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것일뿐. 그것이 도스토예프스키가 모든 사람은 사람에게 죄가 있다고 말한 이유이고 인간이 책임을 지며 살아가야하는 이유일 것이다. 요세미티의 자연을 깊게 빠져드는 경험은 도리어 나의 인간됨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일출과 함께 운전을하며 어렸을 때 사촌 형의 책장에 꽂혀있던 만화책이 떠올랐다. 6.25 전쟁 끝나고 힘들었던 시기의 이야기였는데 너무 배고프고 힘드니까 어린 아이가 "다시 태어나면 아무 것도 모르는 바위로 살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 표현에서 삶의 애달픔이 너무 잘 느껴져서 어린 나이에도 가슴이 찡해졌던 기억이 났다. 

 

비슷하게, 세상물정 모르는 강아지로 살고 싶다던 사람이 있었다. 철없는 소리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참 고달픈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쓰러웠다. 그런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요세미티가 들려준 노래가 있다. 

요세미티의 유명한 포인트 글래시어 포인트는 인기가 많아 들어가는 입구에서 거의 1시간 가량 기다려야한다. 다른 미국의 국립공원도 그러하듯이 이곳에서도 당연히 인터넷 연결이 안 된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해 Youtube Music에 미리 저장해놓은 음악을 틀었는데 첫 곡이 이 곡이었다. 이 노래의 가사와 목소리가 정말로 요세미티가 들려주는 노래같아서 쉽게 다른 곡으로 넘기지 못하고 글래시어 포인트를 들어갈 때까지 반복해서 들었다. 혹시라도 당신에게 주어진 인간의 책임이 너무 막중하게 느껴진다면, 요세미티가 들려준 이 노래를 들으며 힘을 얻기를 바란다. 

Glacier Point

집에 오는 길에 정말 뜬금없는 곳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일단 동네부터가 절대 외지인이 오지 않을 분위기인데다 화장실을 묻자 왼쪽을 뜻하는 Left를 몰라 스페인어로 답해주는 곳이다. 아마 이 곳을 방문한 첫번째 한국인이지 않을까. 이 곳에서 제일 인기있다던 토르타스를를 시켰는데 기가 막힌다. 재료 하나하나의 향이 살아있는데 특히 라임향이 첫 입부터 마지막까지 입안을 상긋하게 채운다. 그리고 저기에 있는 당근의 맛이 참 특이했는데 약간 피클같은 맛이었다. 그리고 칠리 소스가 굉장히 매콤하다. 필요하면 더 넣으라고 옆에 줬는데 더 넣지 못했다. 하지만 DIY의 문화에 익숙한 사람답게 라임은 한가득 뿌려 먹었다. 

올드한 간판, 혼자 식사하는 아재, 화장실 더러움 = 맛집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