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보빙사 EP25 - 먹기
현지화를 한다는 것.
한국에서 레시피나 소스 관련해서 잘 먹히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만능"이다. 1인 가구를 비롯한 소규모 가구 중심으로 레시피가 퍼져나가다보니 한 번 만들어놓고 두고두고 활용할 수 있는 소스나 레시피가 인기가 있다. (이러한 사용자들의 행동 패턴을 봤을 때 최근에 락앤락에서 나온 냉동실 보관에 최적화된 프리즈락은 정말 기획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만능이라는 키워드가 미국에 진출한 소스에도 먹힐까? 안타깝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여기서 보고 경험한 바로는 굉장히 뾰족하게 하나의 용도에 타겟하여 일단 시장을 진입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간장같은 경우에도 덴뿌라용 간장으로 포지셔닝했을 때 매출이 훨씬 빠르게 올라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Meetup을 준비하면서 Hmart에 들렀을 때 점원도 파채소스가 굉장히 핫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Hmart의 진열대에 같은 비빔자인데도 하나는 만능 비빔장에 가깝게 다른 하나는 파채에 특화된 형태로 소구하고 있어 어떤 것이 더 잘 나갈지 궁금했다.
예전에 김밥과 관련한 영상을 찾아보다가 결국 핵심은 물류라는 내용을 보게 되었는데 사각형의 바나나 우유가 이를 입증해주는 것 같았다. 아이덴티티와도 같은 단지 모양을 포기하면서 얼마나 많은 논의가 오고 갔을까? 포장지에 그려진 원래의 단지 모양의 바나나 우유 이미지는 물류를 잡으면서도 아이덴티티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 만들어낸 고육책에 가까울 것이다.
주말 공원에 잠시 나왔는데, 매번 느끼지만 공원을 제각각 다양한 형태로 즐긴다. 한 쪽에서는 생일파티가 벌어지고 있는데 캐노피 옆에는 한가득 선물상자가 놓여있고 아이들은 나무 두 개 사이에 줄을 걸어놓고 그 줄에 장식들을 꾸미며 놀고 있다. 다른 한 쪽에서는 배구가 한창이다. 전위, 후위 나누지 않고 막 하는 배구였는데, 하기 전까지는 쉬워보이지만 껴서 같이 해보면 그들이 얼마나 잘하는지 바로 느낄 수 있는 수준의 실력들이었다. 그리고 한 쪽에서는 피크닉 테이블을 놓고 굉장히 피크닉피크닉스러운 복장의 소녀들이 6명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테이블 가운데에 꽃이 풍성하게 꽃병에 꽂혀있었는데 풍성한 꽃만으로도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게 보였다. 한강에서 누군가 저렇게 화려한 꽃을 테이블 위에 놓는다면 금방 인기가 많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LA에 생긴 카멜 커피를 다녀왔다. 줄은 밖에까지 길게 서있었다. 카멜 커피를 보면서 인상깊었던 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어떻게 그 곳에 카페를 차릴 생각을 했는지였는데 정말 카멜 커피말고는 주변에 딱히 유명할만하다 싶은 곳이 없었다. 그런데 너무나도 절묘하게 카멜커피가 잘 어울리는 위치였다. 뾰족하게 튀어나온 모퉁이 같은 곳에 위치한 카멜커피는 가게가 서있는 평면만으로도 꽤나 아이코닉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안에 카운터, 테이블, 의자, 스피커 등이 정말 통일성 있게 잘 꾸며져 있어 놀라웠다. 이 모든 장식과 소품들을 미국에서 구한 것인지 궁금했다.
최근에 LA에서 굉장히 인기 있는 한국 음식점 중에 라성 하우스라는 곳이 있다. 한국식 왕돈까스를 파는 곳인데 한국의 돈까스 집에 가면 나오는 스프와 비빔쫄면, 냄비우동, 단호박 식혜를 같이 팔고 있는 진짜 한국음식을 파는 한국식당이었다. 한 두 블록 옆에도 다른 돈까스집들이 있지만 이 집의 진짜 한국스러운 돈까스와 다른 메뉴들은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기 충분했고 40~50분은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인기의 비결이기도 하다. 이 라성 하우스의 성공을 보면서 LA에서 한국 음식점의 기회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는데, LA에는 정말 웬만한 한국음식이 다 있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그 와중에 없는 것들이 더욱 소중하고 큰 기회가 된다. 라성 하우스의 왕돈까스가 그러했고 카멜커피가 그러했다. 웬만한 한국 것이 다 있는 LA에서 아직 없는 한국 것들을 찾아내면 기회가 된다. 최근에 LA에서 이닉를 끌고 있는 한국식 카페의 성공도 같은 프레임워크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두 곳을 방문하면 느낀 것이지만 이러한 음식점, 카페들의 초반 바이럴은 한국인 및 아시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져나간다. 과거에는 이들 커뮤니티의 영향력이 크지 않았기에 부채춤을 추며 불고기를 팔아 주류 사회가 원하는 "한국음식"을 제공해야했지만 이제는 진짜 이들이 원하는 찐 한국음식이 인기 있고, 이러한 찐 한국음식이 주류 사회에도 큰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ROW DTLA를 다녀왔다. 일종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같이 기획된 공간인데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일단 엄청 큰 주차 타워에 2시간 무료 주차가 제공이 된다. 감각적인 여러 가게들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는데 자동차 중심으로 짜여진 이 도시에서 몇 안 되는 걸어다니면서 구경하기 좋게 구성된 공간이었다. 그 중에 Core에 집중하는 듯한 운동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체육관이 있었는데 포지셔닝을 잘한 것 같았다.
DTLA의 경우에는 매주 일요일마다 음식들을 파는 팝업이 열린다고 해서 방문했다. 정말 다양한 음식들이 판매되고 있었는데 한국음식을 팔고 있는 두 곳이 있어 그 앞에 자리를 잡고 어떤 사람들이 사먹고 얼마나 인기 있는지 살펴봤다. 그 중 한 곳인 치믈리에는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도 많이 봤던 업체였는데 그 때 느꼈던 것처럼 가게 외관이나 색감 등을 확실히 감각적으로 잘 꾸며놓았다. 나도 들러서 양념 닭강정과 김치 그릴드 치즈를 시켰다.
일단 김치 그릴드 치즈는 바삭하게 구운빵에 치즈와 잘게 다진 베이컨이 들어있는 메뉴였다. 함께 제공되는 디핑 소스가 김치와 치즈를 섞은 묘한 맛이었는데 찍어먹으니 꽤 맛있었다.
같이 주문한 치킨까지 먹으려고 하니 양이 꽤 많았다. 마침 내 옆에 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이 앉았는데 아내와 아이가 다른 음식을 주문하러 간 사이 남자에게 혹시 치킨 먹냐고 물어봤다. 고맙다고 이야기하면서 치킨을 덜어갔고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남자는 부동산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었다. 최근에 뉴욕타임즈 팟캐스트에서 부동산 업계에 수수료 책정방식에 대한 규제가 새로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 그에 대해 물어보니 맞다고, 그래서 예전보다 덜 벌게 되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이 곳을 오게 되었고 무엇을 샀냐고 묻자 아내가 그릴드 랍스터를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가자고 해서 왔고 지금 먹고 있는게 바로 그 음식이라고 답했다. 나에게는 어디에서 왔냐(남한이냐 북한이냐)와 얼마나 되었냐 물어보면서 내가 미국에서 F&B 비즈니스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어떤 것들 준비하고 있는지 물어보며 인스타그램을 교환했다. 늦게 돌아온 아내와 아이들이 가져간 치킨을 먹는데 내가 시킨 치킨이 양념이다 보니 맵냐고 먼저 물었다. 남편이 이 친구가 식당을 준비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니 아내가 굉장히 구체적인 피드백을 전달해줬는데 좋긴한데 두 번 가지는 않을 것 같다고 완곡하게 별로라고 이야기해줬다. 미리 튀겨놓아서 그런지 바삭함이 덜하다고. 그리고 양념도 인상적이지는 않다고. 내가 느꼈던 부분과도 비슷해서 흥미로웠다.
행사장은 4시까지여서 치킨을 더 덜어주고 빠져나와야했다. 주변을 구경하고 벤치에 앉아서 쉬다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꽤 오랜만에 LA 한복판에서 걸어다닐만한 곳을 찾아 기분이 좋았다.
이 곳에서 생일을 보냈다. 점심은 회사에서 스시를 먹으러 가서 미국식 스시를 먹을 수 있었다. 보트피플이라는 메뉴가 있어 시켰는데 예전에 조개구이집에서 내줬던 것과 비슷한 배 모형에 튀김과 엄청나게 두툼하게 썰어놓은 스시가 나왔다. 인스타그램에서 그 식당을 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후미진 곳에 자리해있었다. 예전에 한국에서 갔던 엄청 외딴 곳에 자리한 가성비로 승부하는 오마카세 집이 떠올랐다.
저녁으로는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다 Denny's를 갔다. 예전에 브레이킹 배드에서 월터가 Denny's에서 생일이라고 이야기하니 그러면 공짜로 준다고 했던 이야기를 봤던 것이 떠올라서 생일 리워드를 찾아봤는데 회원가입을 늦게 해서 생일 다음날 리워드가 제공되었다. 아무튼 월터가 먹었던대로 해시브라운과 써니 사이드업 계란을 시켰다. 베이컨으로 월터가 했던 것처럼 나이를 표시하는데 꽤 베이컨이 많아야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기본으로 제공된 베이컨만으로도 숫자를 그릴 수 있었다. 와플 세트를 시켜 디카페인 커피와 먹는데 너무 맛있었다. Denny's나 예전에 Route66에서 들렀던 아메리칸 다이너 식당을 가면 느껴지는 뭔가 편안한 분위기가 있는데 그 비결이 궁금하다. 큰 기대를 안하고 먹었던 저녁이었는데 아주 잘 충전하고 식당을 나왔다. 그리고 QR코드를 스캔하면 바로 결제할 수 있는데 예전에 Chilly's라는 미국의 펍 프랜차이즈를 갔을 때 봤던 방식인데 정말 편리하다. 미국에서는 정말 아직까지도 이런 시스템을 쓰나 싶은 구닥다리 방식을 사용하면서도 가끔씩 이런 정말 획기적인 혁신들도 도입하는, 이 나라가 어떻다고 단정짓기 어려운 나라이다.
대통령 후원 광고가 떴다. 커피 한 잔을 강조하는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다.
자동차 타이어와 배터리를 갈았다. 미국은 시즌마다 유통업체에서 밀어낸다 싶을 정도로 할인을 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5월초는 타이어를 할인 폭이 컸다. 그래서 샘스클럽에서 타이어를 4짝 구매했고 약속을 잡아 타이어를 바꿨다. 같은 날 배터리도 구매했는데 배터리는 내가 직접 갈았다. 샘스클럽에서 갈아주기도 하는데 오래 기다려야 해서 Youtube를 보고 직접 갈았다. 별 것 아니지만 역시 DIY의 나라이다. 얼마 전에 차에 시동을 거는데 힘이 약하길래 걱정했는데 배터리를 갈고 나니 아주 잘 작동한다. 즐거운 미국 생활이지만 나나 혹은 내 분신같은 자동차가 아플 때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다행히 배터리 선에서 해결될 수 있었어서 마음을 놓았다.
5월말이 되어가니 캠핑장비나 아웃도어 제품들 할인을 많이 하는데 미국에서는 메모리얼 데이가 곧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라고 인식한다고 한다. 이런 소비로부터 초연할 것이라 생각했던 나인데 조금씩 백패킹 장비에 눈독들이며 하나씩 장비를 구입하게 된다. 이번 연휴에 요세미티 안에 있는 캠핑장에 숙박할 수 있게 되었는데 너무 기대되고 설렌다. 이번 야영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백패킹을 다녀볼 생각이다.
타이어 교체를 예약한 날, 샘스클럽에 도착하면 타이어 센터에 체크인을 하고 키를 맡긴다. 따로 특정 장소에 주차를 하지 않아 불안한 마음에 혹시 지정 주차장소가 있냐고 묻자 아니라고 답하며 자기네들이 키를 누르고 다니면서 찾는다고 한다. 진짜 웃긴 시스템이지 않냐며 길게 이야기해주는데 이 날과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캘리포니아에서의 스몰토크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감이 생겼다. 혼잣말을 입 밖으로 꺼내면 된다.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을 그대로 말로 하면 저들이 알아서 더 길게 답해준다. 뭔가 미국인이 겉과 속이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도 이런게 아닐까 싶었다. 드는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하니. 마치 만화 원피스에서 루피가 생각을 입 밖으로 하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예를 들면, 다른 날 옷을 사러 갔을 때도 결제를 하면서 '후, 고르느라 힘들었어.'를 "후, 고르느라 힘들었어."라고 말하면 온갖 TMI를 이야기해준다. 그 외 머릿속에 떠오르는 궁금한 것들, 무례하지 않은 선에서 물어보면 쉽게 다 답해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치킨을 나눠먹은 가족들과 그런 식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Denny's에서도 새로운 커피를 내려줬을 때, 기다린 보람이 있는 맛이었다고 하니 길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나니 가장 어려웠던 미국에서의 스몰토크를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감이 잡히는 느낌이다.
이전에 올렸던 F&B 사업을 린하게 해볼 수 있을까의 첫 삽을 떴다. 삼겹살 밋업을 열었다. 원래는 한국에서 인기있는 야장 컨셉으로 내가 빌린 공간의 주차장에 구현을 하고 싶었는데 테이블과 의자를 구하지 못해 임시로 마련한 테이블에 테이블보를 치고 자리를 세팅해야했다. 처음에 준비하면서 뜻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매우 많이 후회하고 솔직히는 포기할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내 안의 애자일하지 않은 모습이 계속해서 튀어나와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계속 떠올랐는데 정말 강.행.했다. 일단 어떻게든 마쳐보자는 마음으로 이벤트를 열었는데 꽤 성공적이었다. 물론 엄청 큰 성공은 아니었지만 같이 자리한 사람들 대부분이 즐거워하는 자리를 만든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미리 준비한 고기와 김치, 미나리 및 쌈을 같이 싸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고 나혼자산다에서 본 취화채를 만들어 나눠먹었다. 자리를 마치고 나서 만족스러웠으면 $42, 그렇지 않으면 $35, 훌륭했으면 $50으로 입금해달라고 해서 피드백을 받았다. 이 입금하는 안내문도 미리 안 만들어 현장에서 즉석으로 제작한 아주 우당탕탕 굴러가는 경험이었는데 우당탕탕이었지만 일을 끝마친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 이 날은 특히나 내 삶에 있어 큰 분기점이 되는 것과 같은 경험이었다. 정말 미국에서 사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그리고 올해 목표였던 생산자로서의 삶에 첫걸음을을 내딛은 느낌이었다. 1시에 시작한 행사를 마치고 다 치우고 나니 저녁 8시 정도가 되었는데 아주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미국에서 이렇게 자전거를 두대씩 끌고다니는 사람을 종종 본다.
새벽 4시 UK Garage계열의 디제잉 공연을 보고 나온 날, 주차장 앞에서 핫도그를 팔고 있다. 이태원이 생각났다. 여기서 밤새 놀고 배고플 때는 늦게까지 여는 코리안타운의 식당을 가거나 아니면 IHOP같은 곳에 가서 팬케이크를 먹는다.
기대되는 일이 많았던 5월이었다. 걔중에서 정말 기대한만큼, 아니 기대한 것보다 더 즐거웠던 일도 있었고 아예 일어나지도 못한 일도 있었다. 원망과 슬픔, 큰 기쁨이 함께 했다. 희노애락이 요동치는 가운데 어떻게 하면 홀로 설 수 있을지 조금은 깨닫게 된 것 같다. 철이 든 것인지...많은 것을 맛보고 먹은 5월, 그 중 제일 맛있었던 것은 나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