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김민기라는 사람을 찾아보았다. 우연히 Spotify에서 그의 음악을 듣게 되었는데, 그 시대의 다른 포크송 음악가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위 말하는 “아우라”가 느껴졌다. 김민기의 이 아우라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찾아보고 싶었다.
어떤 사람들은 <아침이슬>이 민중가요로 널리 불렸다는 사실만으로도 김민기라는 사람에 대한 편견을 갖고 볼 것이다. 그러나 며칠간 이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며 내가 느낀 것은, 그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북한군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사람. 운동권이 아니었지만 운동권이 사랑한 노래를 만든 사람. 그 노래로 인해 온갖 고초를 겪었지만, 정작 본인의 전공은 미술이었던 사람. 김민기를 보면서 든 생각은, 이 사람은 정말로 그것들을 만들 수밖에 없었겠다는 것이다.
삶이 곧 예술인 사람들이 있다. 삶을 예술로 하는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담아낼 수밖에 없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투쟁적인 외침도, 거창한 이념의 선언도 없이, 그저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공기를 있는 그대로 담아냈을 뿐이다. 그런데 동시에 그러했기에—가장 개인적이었기에—그 시대에 공명하고 울렸던 것이라 생각한다.
역설적이게도, 시대적인 것이 억압받던 시기에 가장 개인적인 것을 만들었더니 그것이 가장 시대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차남들의 세계사>의 주인공들처럼, 의도하지 않은 흐름에 휩쓸려 자신의 노래가 민중가요의 상징이 되고, 그로 인해 삶 자체가 고단해진 사람이다.
그러나 이 억울할 수도 있는 운명의 장난에 원망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는 점이 참 존경스러웠다.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예술적 소명을 세상과의 접점 속에서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학전이 그랬다. 공연의 수입을 공개하고, 배우들에게 러닝개런티를 보장해 그들의 인센티브를 이끌어내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가 기업경영을 공부하며 이런 구조를 설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원칙을 따르는 삶이 도달하는 최종적인 모습은 결국 비슷한 것 같다. 어찌되었든 그의 운영 역량으로 극단의 배우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졌고, 그 토대 위에서 한국 문화계를 이끌어갈 배우들이 나왔다. 좋은 구조가 좋은 사람을 끌어들이고, 좋은 사람이 좋은 공연을 만들어내는—정말 이상적인 조직의 선순환을 학전에서 볼 수 있었다. 정재일 같은 음악가도 학전의 음악감독이었다는 사실을 보며, 김민기가 품어낸 예술적 역량의 한계없음에 다시 한 번 놀랐다.
한살림도 그렇다. 어디에서도 일하지 못하고 농촌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발견한 문제, 농촌의 농산물 유통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한살림을 시작했다. 그리고 한살림은 지금 한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협동조합이 되었다. 무슨 거창한 비전이나 꿈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곁에 있는, 아주 가까운 사람들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그것을 해결해낼 방식으로 협동조합을 택했을 뿐인 것이다. 협동조합을 위해 협동조합을 만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그 수단을 택했을 뿐이다. 이 선택과 결정들이 참으로 자유롭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들로 김민기는 자신만의 선순환을 만들어낸 사람이었다. 학전에서도, 한살림에서도, 그리고 아마 그의 삶 전체에서도. 이것이 개인이 세상을 바꾸는 참 정석적이고 원칙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대수가 그에게 선물했다는 <바람과 나>의 노랫말이 그의 삶의 자세를 참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무명 무실 무감한 님 나도 님과 같은 인생을 지녀볼래, 지녀볼래
자신의 음악을 부끄러워하고, 인터뷰를 싫어하고,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그의 성격도 참 인간적이게 느껴졌다. 스스로를 “뒷것”이라 칭하며, “기량인”들이 빛을 보게 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며 묵묵히 그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그가 어린이극에 공을 들였던 것도, 어린이란 그가 사랑하는 미래의 기량인들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기량인에 대한 그의 사랑과 헌신 보면서, 나의 삶의 목표를 떠올려봤다. 나도 눈빛이 빛나는 쿵야들을 위해 살고 싶다. 그들이 자신의 꿈을 펼치고, 세상에 더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반이 되어주고 싶다. 그 목표를 위해 살 수 있다면 김민기 아저씨처럼 어떠한 것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도, 좋은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겉으로 보여지는 사람의 모습과 내면의 모습이 있다고 했을 때, 이 둘이 합일되었을 때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강력한 아우라가 생기는 것 같다. 인간은 이 계속되는 불일치로 고통받고 좌절하는데, 그 불일치를 끊임없이 화해시켜가며 궁극적으로 합일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아우라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김민기의 음악, 공연, 그가 남긴 말과 행동들이 그가 가진 내면과 일치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민기가 공장의 노동자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며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느끼면서 배우라고 조언했다는데, 이 내면과 세계의 통합이 진리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이미 깨달은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나도 세상을 떠나면서 남기고 가야할 것이 있다면 내면과 세계의 합일, 그리고 거기서 만들어지는 아우라일 것 같다.
(참고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김민기의 곡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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