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가스를 다녀왔다. 테슬라를 렌트해서 다녀왔는데 다시는 장거리 운전에 테슬라를 끌고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줬다. 배터리 용량이 작은 모델 3의 경우, 라스베가스까지 가는데 2번 정도 충전해야하는데 편의점과 햄버거 가게밖에 없는 충전소에서 한참 기다려야 해서 매우 비효율적이라 느꼈다. 그리고 가는 길에도 사용가능한 배터리 용량이 계속해서 바뀌는데 이런 UX라면 테슬라 구입은 좀 더 고민해볼 것 같다. 아, 물론 이런 문제가 없다고 내가 바로 살 수 있는건 아니다.
라스베가스를 가는 길에 있는 사막에 들러 트래킹을 했다. 황무지, 사막 그리고 멀리 보이는 바위산을 바라보는데 셜록 홈즈의 주홍색 연구가 생각났다. 어렸을 때 읽은 그 책에서 황무지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도 생생해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직접 밟아보니 그 척박함을 더욱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황무지를 지나 모래 언덕 쪽을 향해 걸어갔다. 모래가 만들어낸 굴곡을 만져볼 수 있었다. 정말 매끈한 곡선이었다. 피보나치 수열의 힘을 체감할 수 있는 아주 유려하고 아름다운 곡선이었다. 사막 언덕 위에 음악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파라솔을 치고 몇 명의 친구들이 모여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시간이 부족해 언덕 끝까지 가보지 못했지만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사막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음악을 틀어놓고 신나게 놀면 무척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파티를 연다면 꼭 사막에서 열 생각이다.
베가스는 Kitsch의 도시였다. 이러한 키치함의 절정을 보여주는 공간은 베네치아 호텔이었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이름을 따온 이 곳은 베네치아를 흉내내 호텔을 지었다. 호텔 사이로 물이 흐르고 베네치아의 리알토 다리와 비슷한 다리를 만들어놓았다. 곤돌라도 다니고 뱃사공도 있다. 미국인들의 유럽에 대한 동경과 판타지를 엿볼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러한 판타지를 참 투박하게 구현해낸 미국인들의 형편없는 미적감각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자본과 스케일로 빚어낸 조악한 모조물은 키치함이 너무나도 선명해서 팝아트같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이 유치한 흉내내기를 재밌게 관광하고 있었는데 한 미국인으로 보이는 커플이 진지하게 베네치아 호텔의 다리 앞에서 웨딩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진심인가 싶었는데 행복해하는 표정을 보니 절대 진심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이 곳에서 웨딩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미적감각을 지닌 사람을 사랑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취향과 사람이 있음을 느꼈다.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의 대중들의 취향이 이 정도라는 점에서 정말 쉽게 맞춰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인들이 이탈리아 까르보나라를 두고 벌이는 논쟁과 식당들이 얼마나 유럽스러운지를 두고 벌이는 치열한 경쟁을 생각해보면, 이 땅값 비싼 라스베가스에서 이 정도만 흉내내도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부럽게 느껴진다.
투박하긴 했지만 베가스의 밤거리는 정말 화려했다. 슈가대디를 찾는 웹사이트의 광고를 단 차량이 거리를 지나가고 한 무리의 여성들로 가득찬 검은색 버스가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지나간다.
요즘 화제인 스피어도 구경했다. 스피어 후기는 멀리서 볼 때 예쁘다이다. 가까이서 보면 DDP같은 느낌이다. 어찌보면 DDP랑 규모에서 별 차이가 나지 않아보이는데 전면 디스플레이라는 아이디어로 라스베가스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포지셔닝시킨 세일즈 실력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물론 내부를 들어가보지는 않아서 섣불리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가까이서 보면 생각보다 압도적인 느낌은 덜하다. 혹시라도 스피어를 구경할 생각이 있다면 트램을 타고 멀리서 구경하는걸 추천한다.
밖에서 곧 예정된 공연의 예고 영상을 틀어주고 있었다. 아기가 나오는 아래 공연의 예고영상을 스피어의 큰 화면으로 보니 께름칙한 느낌이 확실히 전달되기는 했다. 이러한 건물을 짓지 말라는 예언이 있었는데 예언을 무시하고 누군가 건물을 짓고 사람들이 그걸 보러 왔다가 갑자기 비극에 휘말리는 아포칼립스 장르의 첫 도입 장면으로 쓰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기 전에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라는 영화를 보고 왔다. 영화의 주인공이 원래 LA에 살다가 라스베가스로 떠나는데 그 때 잠깐 나오는 LA 다운타운의 모습이 지금 다운타운의 모습과 거의 비슷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휙휙 바뀌는 한국과 또 다른 모습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알콜 중독자와 매춘부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정말 지독하게 알콜 중독자 연기를 잘해서 보는 내내 나도 중독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슈는 의지할 곳이 필요한 사람의, 처량하고도 애절한 눈빛을 정말 잘 연기했다. 개인적으로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그들이 내린 선택들에 공감은 잘 안 되지만, 나이를 먹다보니 주변에 이런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예전에는 도무지 그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그 사람만의 어떤 사연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자기연민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자해에 가까운 행위들은 이해가 어렵다. 아직 내가 진짜 힘든 일을 못 겪어봐서 그런가...
영화에서의 주인공과 같은 망나니는 길에서 보이지 않았다. 도박의 도시, 미국의 다른 도시와 달리 24시간 여는 곳들도 많고 (심지어 스타벅스도!) 새벽에도 길거리가 사람들로 꽉차있고 슈가대디를 찾는 서비스같이 아슬아슬한 것들 천지인 이 도시가 어떻게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 궁금했다. 라스베가스는 도시의 표어가 "모든 것이 허용된 도시"로 이 곳에서는 정말 많은 자유가 부여되는데 어떻게 도시의 질서가 유지되는 것일까?
같이 간 분이 소개해준 이 영상에 그 답이 나와있다. 라스베가스는 도시 미관을 해치는 행위나 주체들을 매우 엄격하게 관리한다. 모든 것이 허용된 도시 라스베가스에서 모든 것이 허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강력한 공권력과 행정력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 아이러니하다고 느끼면서, 인간 사회의 필연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음 날에는 라스베가스의 관광 코스, 코카콜라 스토어에 들렀다. 2층에서 전세계에서 파는 특이한 코카콜라의 맛을 시음해볼 수 있었는데 오이맛 코카콜라가 기가막혔다.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슈퍼스타는 안티팬을 통해 완성되는 법이다. 오이맛 탄산음료, 기회라고 본다. 그 외 하얀 콜라, 목초액맛이 나는 코카콜라 등등 여러 코카콜라를 맛볼 수 있었다. 아 그리고, AI로 만든 콜라도 있었는데 AI가 붙은 많은 제품들의 느낌과 비슷하게 흔한데 안 흔하려고 기를 쓴 맛의 콜라였다. 사실 최적화의 여지가 적은 음료 제조 과정에서 AI를 쓴다고 달라질 부분이 많지 않으리라 생각하는데 그렇게 출시할 수는 없으니 몇 가지를 첨가한 느낌이었다.
항상 새로운 음식을 시도해보는데 전날 저녁에 멕시코 식당에서 할라피뇨가 들어가는 칵테일을 시켰다. 굉장히 짭쪼름하고 매콤한 맛이라서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는데 먹다가 문득 동치미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는 순간, 굉장히 잘 어울리는 칵테일이 되었다. 음식을 먹다가 좀 개운한게 필요한 느낌으로 마시니 그럴싸했다. 혹시 바나 술집을 열 생각이 있는데 이색적인 음료 메뉴를 추천받고 싶다면 오이맛 탄산음료와 동치미 칵테일을 추천한다.
멕시칸 요리 이야기를 하자면, LA에 지나다니다 보면 길에서 멕시칸 요리를 파는 푸드트럭을 종종 볼 수 있다. 매번 그냥 지나가기만하다가 한 번 시도를 해봤는데, 와우..미국에서 먹은 음식 중에 탕수육 다음으로 제일 맛있었다. 주문을 하면 번호표를 준다. 번호표를 받으면 옆에 비치된 테이블에서 비닐봉지에 소스, 오이, 당근 등을 주섬주섬 원하는대로 담아 놓으면 된다. 트럭이 좁다보니 2명 정도 일하는데 내가 갔던 트럭은 한 명이 요리를 하는 곳이라서 음식이 나오는데까지 시간이 오래걸렸다. 꽤 오랜 시간 기다리고 부리또를 받아 먹어보는데 정말 기가 막히다.
솔직히 미국에서 식당을 가고 만족한 적이 별로 없다. 미국인들의 미적 감각만큼이나 미식 감각도 굉장히 관대하다고 생각하는데, 식당 느낌나면 이 사람들은 대부분 만족하는 것 같다. 내가 한국의 맛있는 식당에 갔을 때 받는 기분 좋은 충격을 미국 식당에서 받기 위해서는 훨씬 큰 비용을 지불해야한다. 근데 멕시칸 요리는 LA 압승이다.
미국에서는 Zip Code가 굉장히 중요하다. 한국에서 처음 회원가입할 때 빼고는 딱히 생각해본 적 없는 Zip Code인데 미국에서는 주유를 할 때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신원 인증 절차로 Zip Code를 입력해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관공서를 가도 주소지를 증명할 수 있는 우편을 들고 방문해야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주유소 카드 결제기나 은행 ATM이 같은 회사인데도 지점마다 다른 경우가 많다. 중앙집권스러운 모든 것이 힘을 쓰지 못하는 곳이 미국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점에서 맥도널드는 정말 대단하다. 누가 미국의 고속도로에는 휴게소를 찾기 어렵다고 쓴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미국의 휴게소는 맥도널드다. 거의 모든 Exit에 맥도널드가 주유소 옆에 있는데 중앙집권적인 무언가 만들기 힘든 이 넓은 땅덩어리에 맥도널드라는 시스템을 만들어낸 경영 역량이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진다.
할로윈에 진심이다. 미국 생활을 하면 느낀 것이 연휴가 굉장히 적다. 내 생각과 달랐던 부분인데 미국에서 오히려 쉬는 날이 더 적다. 설, 추석 같이 다 같이 쉬는 연휴는 Thanksgiving day나 Christmas 정도이고 각자 알아서 쉬는 문화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이런 공휴일이나 기념일이 있을 때 한참 전부터 기대감을 갖거나 혹은 끝나고도 한참 여운을 느끼며 휴일을 즐기는 것 같다. 할로윈만해도 거의 9월말부터 마트나 동네에서 할로윈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요세미티를 한 번 더 다녀왔다. 이번에는 석양이 질 때까지 남아서 맥북 배경화면을 제대로 느끼고 올 수 있었다. 다녀오는 길에 지난 번과 같아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숙소로 왔다. 그 때까지 열려있는 식당을 찾아 Pizza Factory라는 곳을 갔는데 요세미티 맛집이다. 일단 동네 야구팀 사진이 걸려있는 것에서부터 이 곳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약간 한국의 피자스쿨처럼 동네 사람들이 가볍게 먹는 피자가게 분위기였는데 피자도 굉장히 맛있었다.
요즘 나의 관심사는 인스타 광고이다. 미국에 있다보니 인스타그램 광고도 미국 서비스들이 나오는데 비디오들을 너무 잘 만들어서 나조차도 전환이 된다. 최근에 보고 소구점을 정말 잘 뽑았다고 생각한 광고가 있었다.
미디어커머스, D2C 등의 열풍이 한 풀 꺾이긴했지만 잘 파는 사람은 잘 판다. 그리고 이제 비디오를 빼놓고 잘 팔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비디오의 단점이 정보가 순차적으로 제공되어 텍스트처럼 생략, 스킵하며 정보를 얻기 힘들다는 점이었는데의 틱톡, 쇼츠, 릴스 같은 숏폼 콘텐츠의 유행으로 비디오에서도 불필요한 정보가 사라지고,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 같다. 특히 이러한 비디오 콘텐츠에 익숙한 비디오 네이티브 세대에서는 그 속도가 더욱 빠를 것이다. 그래서 이런 변화하는 비디오 중심의 커머스 환경에서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비디오를 잘 만드는 역량은 매우매우 중요해질 것이라는 생각이고 나도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있다. 일단 예쁜 비디오를 만들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모르겠어서 아는 디자이너 분께 과외를 받기로 했다.
그리고 또 관심있는 영역은 AI Vision 기술이다. 왜 이렇게 보는 것에 관심이 생겼는지 생각해보니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에 오니 영상만큼 쉬운게 없다. 텍스트를 통한 정보 습득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끼고 있다. 한국어 환경에서 읽기는 나에게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여기서는 여전히 어려움이 있고 그래서 쉬운 것, 직관적인 것을 더 추구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러다보니 한국에서보다 대중과 내가 보는 서비스의 갭이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내가 사용하는 스윙비전 역시 인스타그램 광고를 통해 접하게 된 서비스인데, 테니스를 칠 때 영상을 촬영하면 공의 스핀, 속도, 그리고 떨어진 위치를 표시해준다. 게다가 나중에 영상을 볼 때 내가 쳤던 샷의 종류, 랠리의 길이 등 여러 필터를 적용해서 영상을 골라볼 수 있다.
Autopilot도 그렇지만 확실히 Vision이 껴있는 기술을 볼 때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와우가 있는 것 같다. 물류 관련 일을 옆에서 지켜보며 느낀 것인데 우리와 생각과 달리 정말 많은 시간들이 어이없는 일들에 쓰인다. 예를 들어, 잃어버린 물건의 위치를 잊어버려 창고에서 물건을 찾는 것과 같은 일들 말이다. 누구는 로켓을 화성에 보내네 마네 하고 있는데 이 곳에서는 아직도 사람의 손을 타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다. 근데 사람의 눈과 손을 믿을 것이 못 되어 그들이 만들어낸 실수를 복구하는데 정말 많은 시간들이 쓰이고 있다. 디버깅하는데 시간을 거의 다 보내는 느낌?
사실 이런 종류의 일들은 기계에게 다 맡겨왔는데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일은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이제 AI 기술의 등장으로 단순한 판단은 인간보다 기계가 잘할 수 있게 된 것 같은데, 물류 창고에서도 이러한 기회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Vision 기술을 활용한 창고 관리 SaaS에 관심 있는 분이 있다면 연락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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