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 처음으로 수영장에 와봤다. LA Fitness나 24hours Fintness같은 체육관에 있는 수영장말고 수영장만 있는 곳을 찾아왔다. 해당 지역에서 운영하는 Aquatic Center인데 비용이 굉장히 저렴하다. 1회 이용에 $3.5밖에 하지 않는다. 물론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긴하지만 매우 저렴한 가격이다. 미국에는 이러한 Aquatic Center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굉장히 다양한데 수영과 웨이트트레이닝(?)같은 것을 접목한 것도 있고 그냥 즐기는 수영도 있다. 한국에서 하듯 자유수영을 하고 싶으면 Lap Swim 프로그램을 찾으면 된다.
- 미국에서는 한 레인에 한 명만 들어간다고 하길래 걱정이 되어 리셉션에 있는 분한테 여쭤보니 예전에는 그랬는데 요즘에는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고 한다. 2~3명정도까지는 같은 레인을 써도 된다고 한다. 락커에 들어갔는데, 문이 안 잠긴다. 처음에는 내가 사용법을 모르는 줄 알았는데 그냥 안 잠긴다.
- 그리고 수영장에 들어가는데, 발이 안 닿는다.... 진짜 수영장에서 익사당할뻔했다. 라이프 가드가 있으니 죽는다는 생각까지는 안 갔지만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여기서 구해지면 얼마나 쪽팔릴까, 다시 한 번 아시아 남자의 스테레오타입을 강화시키는구나...나같은 사람이 나말고 또 있었겠지..빈도가 얼마나 될까..미국은 어릴 때부터 수영을 해서 다르려나..'
- 진짜 여기서 꺼내지면 너무 쪽팔릴 것 같아서 레인에 있는 줄을 붙잡고 간신히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레인을 붙잡고 꾸역꾸역 끝까지 와서 물밖으로 나왔다. 애써 태연한척하며 사실 이것보다 실력이 나은데 환경이 바뀌어서 놀란 사람인 척 연기를 했다. 나와서보니 여기는 기본 수심이 2m가 넘었다. 미국에는 수영장마다 라이프 가드가 있길래 왜 그러나 싶었는데 없으면 안 되는거였다.
- 물 밖에서 놀란 호흡을 진정시키며 내적 고민을 계속하다 일단 해보기로 했다. 도저히 엎드려서는 못 갈 것 같아서 일단 누워서 배영으로 출발했다. 용기내서 배영으로 갔다오기는 성공했는데 자유형은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다. 수영장에 있는 부판을 잡고 왔다갔다하기로 하는데 이것도 쉽지 않다. 중간에 멈출 수 없으니 살기 위해 헤엄친다. 실력이 느는게 몸으로 느껴진다. 들어올 때 올림픽 챔피언이 나온 곳 어쩌고 저쩌고 문구가 있었는데 그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그 사람도 분명 처음에는 살아남기 위해 손발을 내저었을 것이다.
- 결론적으로 매우 힘들었지만 재밌었다. 죽기살기로 하게 되는데서 오는 쾌감이 있다. 그리고 이 재미가 미국에서 느낀 많은 재미와 궤를 같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미국에서는 같은 일도 더 재밌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자신이 감당할 Risk의 수준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Own Risk 아래 더 많은 것들이 허용된다. 자신이 Risk를 감수한다면 사람이 없는 바다에서 서핑을 할 수 있고, 호수에서 자기가 가고싶은 곳까지 카약을 탈 수 있다. 승마 체험에서 훨씬 빠르게 말을 모는 것도 가능하고 아직 가보지는 않았지만 스키장에는 안전바가 없는대신 훨씬 더 자연 그대로의 슬로프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심지어 음주운전도..혈중 알코올 농도를 정해놓기는 하지만 스스로 판단한 운전가능 여부를 더 존중한다. 말 그대로 Your Own Risk이다. 한국에서 오리배, 카약을 타면 약간 이도저도 아닌 느낌을 받아 항상 아쉬웠는데 이곳에서는 Risk를 감수하면 정말 엄청난 자유가 주어진다. 대신 그 대가를 정말 고스란히 본인이 져야 한다.
- 그래서 Risk에 보수적이어야할 때는 매우 보수적이다. 미국에서는 스쿨버스 관련 법규가 굉장히 엄격해서 모든 차들이 스쿨버스가 있으면 서행하고 조심해서 운전한다. 얼마 전에 방문한 Sam's Club에서 나오다가 음료를 흘렸는데 그냥 닦고 치우는게 아니라 아예 사람들이 못 지나가게 출구를 통제한다. 월마트 계열의 Sam's Club같은 큰 기업에서는 안전과 관련한 Risk를 지지 않는 것이다. 출구가 막혀 긴 줄이 생겼지만 얼음과 음료수가 완전히 치워질 때까지 출구를 오픈하지 않는다.
- 이 모습들이 미국 사회에서 Risk를 대하는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일에 Risk가 있음을 전제하고 사람마다 그 Risk의 수용 정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존중한다. 한국에서는 Risk 수준의 상한을 정해놓는 경우가 많아 스스로 선택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에 와서 Risk 수준을 결정해야하는 순간을 맞닥뜨리면 많이 당황했다. 하지만 나같이 스스로에 대한 메타인지를 곧잘 하는 편인 사람은 Risk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훨씬 낫다. 이것이 내가 미국 생활에 만족하며 잘 적응하고 있는 이유인 것 같다. 지난 글에도 썼던 것 같은데 스스로를 잘 알고 좋아하는 것이 분명한 사람에게 미국은 분명한 기회의 땅이다.
- Sam's Club 이야기가 나왔으니 얘기를 하자면 월마트 계열의 창고형 매장이다. 월마트에서 경쟁사 Costco를 벤치마크해 운영하는 유통체인인데 얼마나 비슷하냐면, 멤버십 기반의 창고형 매장으로 운영하는 것은 기본이고 Kirkland PB 상품이 있는 품목들은 Member's Mark라는 이름으로 비슷하게 제공하고 Costoco의 로티셰리 치킨뿐만 아니라 핫도그, 피자도 카피해서 똑같이 판다. 미국에서 Costco를 가는 중요한 이유인 Gas Station도 있어서 저렴하게 주유를 할 수도 있다. 정말 그대로 베꼈고 후발주자이기에 근소하게 가격이 더 저렴하다. 미국에서는 이렇게 기업들끼리 경쟁할 때 소비자가 빼먹을 수 있는게 많다. 말했듯이 이 나라에서는 기업간 경쟁으로 증대되는 소비자 효용이 복지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미국 사람들이 실제 소득보다 높은 소비 수준을 유지하고 부족한 사회적 안전망을 가지고도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이유는 기업간 경쟁이 소비자의 구매력을 증대시켜줬기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는 미국 사회를 지탱하는 굉장히 중요한 경제적 축이기에 기업 관련 규제가 많지 않은 미국에서도 독점기업은 Anti-Trust같은 법으로 엄정하게 규제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번 Amazon의 반독점법 기소가 어떻게 결론이 날지 매우 궁금하다. FTC 쪽의 근거가 그렇게 탄탄해보이지는 않는데 아무 근거없이 기소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향후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다.
- 식비를 아끼기 위해 나는 Sam's Club으로 바꿨는데 정말 월마트 일 잘한다. 유통 대기업이라 해서 한국의 롯데나 이마트 같은 곳 생각하면 안 된다. 이전에 월마트 모바일 앱이 생각보다 훌륭해서 놀랐다고 쓴 적이 있는데 Sam's Club도 정말 감동적이다. Scan&Go라는 기능이 있는데 Sam's Club앱을 열고 자신이 장본 상품을 스캔하면 모바일 앱에서 바로 결제할 수 있다. 그래서 나갈 때 바코드를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그 자체로도 매우 심리스한 경험인데 이미 결제를 했지만 더 결제하고 싶을 때 등의 케이스들도 아주 쉽게 해결할 수 있게 구현되어 있다. 그리고 푸드코트도 미리 Scan&Go하면 주문서만 보여주면 바로 받아갈 수 있게 구현해놓아서 온/오프라인의 결합이라는 관점에서 정말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월마트가 월마트가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사용하는 과정에서 어렵다고 느낀 순간이 단 1초도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미국 소비자들을 오랫동안 상대해온 월마트의 노하우가 빛을 발한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근데 이렇게 편리한 기능이 있고 잘 구현해놓았음에도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그냥 줄 서서 기다린다. 물건이 많아서이기도 하겠지만 변화를 싫어하는 미국 소비자들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 생각했다.
- 주말에는 Santa Barbara와 Solvang을 다녀왔다. 각각 스페인, 덴마크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LA 근교도시인데 다녀온 평을 말하자면 딱 미국 밖으로 안 나가는 미국인들이 적당히 즐기기 좋은 동네들이다. 실제 유럽의 분위기나 아름다움에 비할 바 못 된다. 그래도 힙한 관광지는 맞다는 생각이 든게 일단 게이커플이 굉장히 많이 목격되고 세련된 편집샵과 카페들이 많이 있다. 지난 번 조슈아트리 방문 때도 이 점이 신기했는데 도심과 그 근처를 중심으로 세련된 상권이 형성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다운타운 같은 도심에도 세련된 상권이 있긴하지만 이러한 관광지에 꽤 잘 형성되어 있다. 주말이 아닌 평일에는 어떤 식이 경제활동이 이뤄지는지 궁금하다.
- 가는 길에 미국 서부에서 유명한 해안도로 101번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는데 정말 캘리포니아를 잘 보여주는 고속도로였다. 옆에는 웅장한 산들이 산맥을 이루며 굽이굽이 뻗어나가고 반대쪽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 중간에 호수가 있어서 들러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흐르는 강이나 파도 치는 바다와 다른 호수만의 잔잔한 매력이 있다. 보고 있으면 저절로 마음이 평온해진다. 물론 그 평온함은 오래가지 못하고 이내 곧 물수제비를 했다. 그동안 내 물수제비 실력에 대한 불신을 잠재울 좋은 영상을 건졌다. 밤에 잠 안 오는 사람은 돌 몇 번 튀기는지 세면 잠 잘 올거다. 역시 미국물이 다르다.
- Santa Barbara를 들렀다 집에 오는 길에 지는 석양이 너무 아름다웠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선루프에 몸을 내밀어 석양을 등지고 키스를 하고 있었다. 나도 이대로 이 바다와 석양을 지나치는 것이 아쉬워 가장 가까운 출구로 나가 바다를 구경했다. 이곳에도 Risk는 존재했다. 인적이 드문 이 바다에는 Life Guard가 없으니 Your Own Risk에서 바다를 즐기라는 문구가 써있었다. Risk를 감내하며 바다를 즐긴 한 서퍼가 서핑을 마치고 걸어나오는데 정말 캘리포니아스러웠다.
Bo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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