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보빙사

모던 보빙사 EP32 -약속의 땅

버드나무맨 2025. 5. 24. 16:32

뉴포트의 명물, 얼린 바나나.  얼린 바나나를 지금은 사라진, 예전 맥도날드의 소프트콘을 초코에 디핑하는 형태로 초코에 찍고 그 위에 내가 선택한 토핑을 뿌려준다. 놀랍게도 맛은 정말 얼린 바나나다. 서걱거리는 식감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며 심지어 공급망 관리에 문제가 있는지 덜 익은 바나나를 사용해서 그 서걱거림이 배가 된다. 

 

캘리포니아에서는 한 가게가 잘 된다고 그 옆에 비슷한 다른 가게가 생기는 경우를 잘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거리에는 얼린 바나나를 파는 가게가 몇 곳 꽤 가까운 거리에 붙어있었다. Original과 Since를 강조하는 각각의 간판이 우리집 뒷편 한국의 남산돈까스 거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외 이 거리에 있는 여러 상점들을 보면서 이 동네 사는 부자들은 심심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과연 물건이 팔리기는 하는걸까 의심스러운 낡은 잡화점에, 애매한 화이트톤 감성의 카페, 그리고 얼린 바나나. 이 거리의 렌트가 어느 정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동네에 이 정도 감성이라면 한국인으로서 이들에게 더 나은 쇼핑 경험을 제공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적인 올드머니 타운 뉴포트에는 많은 요트들이 정박해있었다. 정박해있는 요트 중 판매 중이라는 팻말이 붙은 요트가 있어 가격표를 들여다봤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많이 나가지 않았다. 뭐 그렇다고 지금 살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베이지색 시트를 사용하고 초록색 컬러를 포인트로 넣은 4인 정도 탈 수 있는 작은 보트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샌디에이고를 다녀왔다. 샌디에이고 Gaslamp 거리에서는 무슨 날인지 곳곳에서 이벤트가 열리고 있었다. 그 중 한 곳에서는 ESTRELLA 맥주에서 무료 시음행사를 하면서 판촉행사로 레슬링 경기가 열렸다. 미국인이 사랑하는 아이스티, Arizona와 복숭아맛 과일 주스 Jumex의 알코올 버전의 시음행사가 있었다. 이런 시음행사나 술이 따르는 행사를 갈 때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인데 캘리포니아에서는 이 술을 먹을 수 있는 구역에 대한 규제가 엄격해서 보통 분리된 게이트를 설치하고 그 게이트에 입장할 때 신분증을 확인하고 그 구역을 벗어나서는 술을 마실 수 없다. 요즘 식당 오픈을 준비하면서 여러 퍼밋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이 퍼밋에서 지시하는 규정사항들이 꽤나 디테일하다. 아마 설치해야하는 펜스의 규격 등도 미리 정해져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맛을 봤는데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이렇게 시음을 하는동안 레슬링 경기장 주변에는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들었다. 시음하기 전부터 사람들이 북적되었는데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었다. 경기가 시작하기까지 꽤 오래 시간이 걸렸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들고 기대하는 것을 보며 미국 본토의 레슬링은 얼마나 재밌는지 기대가 되었다. 

 

꽤 시간이 흐르고 한 명씩 입장을 시작하는데 두 명, 세 명까지 올라올 때는 '오! 셋이서 싸우나' 싶었는데 네 명이 되니 '2:2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계속 들어와 총 8명이 링 위에 있게 되었다. 내가 알던 레슬링의 전개와 달라 당황했는데 심판의 신호와 함께 경기가 시작되자 미리 짜놓은 합에 맞춰 6명이 나가 떨어지고 2명만 남게 되었다. 이후에는 그 2명이 엎치락 뒤치락하다가 앞서 나가떨어졌던 인원들로 교체되면서 경기가 진행되었다. 

 

걔중에 좀 날렵한 사람이 있긴했는데 전반적으로 동작이 둔탁하고 다이나믹하지 못했다. 항상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제일 잘 녹음된 버전만 듣다보니 그게 별로 대단한지 모르다가 실제 아마추어 연주자의 연주를 들으며 내가 듣던 연주가 정말 놀라운 결과물임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WWE의 프로레슬러들도 어느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프로레슬링하면 응당 그 사람들을 기준으로 생각하게 되다보니 별로 대단한 줄 몰랐는데 그보다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은 레슬러들의 경기를 보니 그 차이가 확실히 체감되었다. 

 

이러한 수준 차이가 현격히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사람들은 꽤나 열광하며 즐겼다. 솔직하게는 경기 자체에서 느껴지는 즐거움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 가지 콘텐츠에 같이 열광하는 그 분위기에 더 취하는 것 같아 보였다. 나는 잘 이해 못했는데 이 경기에도 나름의 스토리가 있는지 우리 옆에 있던 한 여성 분은 누가 나쁜 놈이고 좋은 놈이고, 어떤 유형의 캐릭터인지를 같이 온 일행에게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앞에 여자끼리 온 그룹과 남자끼리 온 그룹이 스몰토크를 하는데, 캐나다에서 공부한 대학생이라는 남자 쪽 그룹의 일행이 한참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자 쪽 그룹의 일행에게 "같은 나이인 줄 알았다."고 말하고 그에 반색하는 상대 그룹의 모습을 보면서, 한국보다는 덜해도 동안이라는 말을 안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 한국에서도 초등학생들 대상으로 프로레슬링이 인기라는 뉴스를 봤는데 초등학생들이 좋아할법한 요소는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샌디에이고의 Fish Market에 들렀다. Malibu에 있는 Fish Market과 비슷한 레이아웃으로 구성되어 있는 매장이었다. 벽에 걸린 물고기를 낚인 사진들, 진열대에 놓인 횟감들 아주 전형적인 Fish Market의 스타일을 따르고 있는 매장이었다. 칵테일 새우와 관자타코, 새우타코, 방어샌드위치를 시켰다. 사실 칵테일 새우는 칵테일 세비체인줄 알고 시켰는데 진짜 칵테일 새우였다. 같이 나온 소스가 한국의 초장과 맛이 아주 유사했다. 새우는 싱싱하고 살이 꽉차 있었는데 게살은 짭조름한 맛이긴했는데 한국의 게살같은 감칠맛은 부족했다. 

 

방어샌드위치는 구운 방어가 패티로 들어가 있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생선을 먹을 때마다 느끼는거지만 왜 밑간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 밑간이 안 되어 있어 맛이 애매했다. 게살이랑 곁들여 먹으니 간이 맞았다. 

 

그런데 관자타코는 아주 기가막혔다. 만약 이 곳에 다시 가게 된다면 관자타코만 먹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한 관자타코였다. 이렇게 싱싱한 관자를 먹어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아주 탱글탱글한 관자였다. 그리고 보통 이런 음식은 관자가 한 두 개 들어있어 처음 몇 입에 관자의 맛에 감탄하고 나면 뒤에는 관자없이 먹어야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관자가 마지막 한 입까지 남아있을 정도로 푸짐하게 들어있었다. 이 곳이 Fish Market임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아주 탁월한 관자타코였다. 

 

샌디에이고에 가면 꼭 가는 발보아 파크에도 들렀다. Visitor Center에 들러 지도를 받고 안내를 받았다. 안내해주는 분이 설명을 마치면서 한국인이냐 물어보며 한국의 한 연애 예능 프로그램에서 발보아 파크에 들러 촬영해서 사람들이 거기서 촬영을 많이 한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나중에 그 쪽을 가보니 LA에 사는 20대 여성들의 프로필 사진에서 자주 보이던 그 장소였다. 나는 따로 남기지 않았다. 

 

발보아파크는 되게 여러가지 행사와 공간들이 다 모여있는 공간이었다. 만약에 샌디에이고에서 애를 키운다면 주말에 종종 놀러올 것 같은 곳이었다. 이곳에 있는 정원이나 식물원은 엄청 인상적이지는 않았는데 예상치 못하고 마주했던 두 곳이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이 곳에서 열리고 있던, 신진 예술가의 전시였는데 전시가 아주 훌륭했다. 작가의 세계도 너무 명확했고 각 작품마다 요소의 형태나 배치가 적절한 긴장감을 이루었다. 그리고 사용한 소재도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와 아주 잘 어울려 매우 훌륭하다 판단했다. 

 

공간 한 쪽에서는 비닐로 만든 옷이 천장 위에 매달려 돌고 있었는데 단순히 매달아 놓은 것이 아니라 움직이게 만들어놓음으로써 적절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처음에는 약간 Cheesy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보면 볼수록 재능이 출중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LA 코리아타운에 있는 갤러리에 갔다가 실망했던 것과는 아주 다른 경험이었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도 그 자체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전시였다. 

 

전시를 보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Iris Show가 열리고 있다는 팻말을 봤다. 팻말을 따라 행사장으로 이동했는데 커다란 강당같은 곳에 흰색보를 입힌 테이블이 줄지어 놓여있고 그 테이블 위에 여러 Iris, 수선화가 놓여있었다. 메인에 놓여있는 단상과도 같은 테이블에는 San Diego Iris Society에서 선정한 수상작이 수상 부문과 함께 진열되어 있었다. 

 

이 진열대 외에도 이 Society 소속 회원들이 출품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주 다양한 형태의 수선화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각각 어떤 부문에서 1등, 2등, 3등을 했는지 적혀있었다. 하나도 빠짐없이 어떤 부문에서는 1등, 2등, 3등이도록 부여되어 있었는데 아주 디테일하게 부문을 나누면서도 그 부문의 경쟁에 너무 매몰되지 않는 모습처럼 보여 보기 좋았다. 샌디에이고라는 지역에서, 수선화라는 주제로도 이렇게 열정적인 사람들이 모여 이런 행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미국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 어디에나 볼 수 있듯이 여기에서도 여러 종교 단체들이 모여 있었다. 기독교가 주를 이루는 한국과 달리 이슬람교, 유대교 등이 비슷한 규모로 진을 치고 있었고 흥미로웠던 점은 무신론 단체도 같은 규모로 진을 치고 있었다는 점이다. 관심을 갖고 들리니 서울을 좋아하는 아주머니 한 분과 굉장히 쿨해보이는 두 분의 아저씨가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인생을 즐기라며 앞에 놓여 있는 팜플렛과 스티커를 마음껏 집어가라고 해주셨다. 예전에 비교종교학 수업에서 무신론도 믿음의 한 형태로서, 많은 부분에서 종교적인 속성을 가진다고 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루이스 칸이 지은 솔크 연구소를 다시 또 방문했다. 평일이라서 중정을 볼 수 있을까 했는데 역시나 예약을 해야지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건축학과 전공생인 척 경비아저씨한테 떠봤는데 나같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는지 많은 건축학과 학생들이 빈 걸음으로 돌아간다고 말씀해주셨다. 듣고 있던 옆에 있던 다른 방문객이 건물 설명을 요청해 대충 얼버무리며 주변을 구경했다. 이번에 와서 보니 얼마 전 본 브루탈리스트에 나온 건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르셀로나 같아 지루할까 걱정했던 샌디에이고의 마지막 밤은 스페인 요리로 마무리했다. 약속의 땅, 샌디에이고. 미루었던 많은 약속과 다짐을 나누었다. 

빌딩에 새로운 광고를 도색하는데 이렇게 사람이 직접 그릴거라 상상을 못했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직접 칠하는 것말고 마땅히 다른 방법도 없긴한데 광고판들의 크기가 크다보니 이를 직접 칠한다는 생각을 잘 못했던 것 같다. 

생일은 역시 Denny's에서. UCLA 근처에서 일정을 마쳐 근처 Denny's에서 식사를 했는데 지점 퀄리타가 아쉬웠다. 아니 이렇게 접시에 나눠서 주면 느낌이 안 사는데...추가로 시킨 해시브라운도 잘 안 익어 더 익혀달라고 부탁했다. 여러모로 퀄리티가 아쉬웠지만 매니저 아저씨가 혼자서 성실하게 일하고 계셔서 그 외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UCLA 근처에 있는 카페. 정말 저 기계 하나와 앉을 수 있는 쇼파 몇 개가 매장의 전부였는데 아주 린하게 잘 만든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옆에 있는 Cava에서 식사를 했는데 매장 조명이나 채광 등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다른 Cava매장과 비교했을 때 아쉬웠다. 건물의 천장이 공사 중이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느낌이 들어 Cava의 매장 관리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최근까지도 공격적으로 매장 확장을 했던 브랜드라 이런 부분이 더욱 취약할거라 생각하고 그래서 Cava 주식은 고평가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단편적인 경험으로 적정한 주가를 논하는 것은 다소 비약이 있는 일이기는 하나, 최근 맥도날드나 월마트의 선전을 보면서 이런 소비자 품목 쪽의 미국 주식을 보는 방법에 대한 가설을 하나 세웠다. 한국의 경우,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보니 기업의 펀더멘털 이외의 외생적 요인으로 인한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은데 미국의 유통, 소매기업은 이런 부분은 다소 적은 것 같다. (최근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논외로 하자) 그래서 정말 소비자의 입장으로 봤을 때 잘한다, 사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 실제 좋은 실적을 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재작년 맥도날드가 지나친 가격 인상으로 인해 고전하고 작년부터 다시 Meal Deal을 비롯한 저가 메뉴들을 확충했는데 그 메뉴들의 경쟁력이 훌륭해 나도 종종 사먹곤 했다. 

 

그리고 월마트의 경우에는, 내가 칭찬하는 Sam's Club. 이번에 Scan & Go 고객을 위해 통과하면 결제 여부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실제 줄을 통과하는 시간이 현격히 줄어들고 체감되는 고객 경험이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었다. 대기업에서 이렇게 천의무봉같은 솜씨로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 것을 보며 아주 좋은 거버넌스를 갖고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관세 충격에도 불구하고 좋은 실적을 내고 있다고 들었다. 

 

비슷하게 랄프 로렌의 광고를 보면서,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고 반대로 서브웨이는 절대 주식 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브웨이는 매각 이후 사모펀드에서 운영 중) 뭐 아직 표본이 적긴하지만 피터 린치같은 아저씨가 10루타 치는 종목을 찾는 방법으로 아내나 아이들의 일상을 관찰하라고 한 것이 외부 요인의 영향이 적은 미국 시장에서 잘 적용될법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엄마아빠가 미스터트롯을 볼 때 기웃거리며 같이 잠깐 봤었는데 그 때 잘 이해가 안 되었던 것이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설운도가 나태주를 굉장히 눈여겨보는 부분이었다. 노래가 뛰어나다거나 비주얼이 특별하지도 않았고 태권도를 배운 경력을 살려 무대에서 공중제비같은 화려한 동작을 보여주는게 전부라 생각했기에 왜 그렇게 눈여겨 보는지 잘 이해를 못했다. 아마 마지막에도 순위권에 못 들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뒤로도 종종 여기저기 방송에 출연하는 것을 봤다. 도대체 어떻게 섭외가 되는 것인지 잘 이해가 안 되긴했지만 어쨌든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리스펙할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별다른 생각없이 지냈는데 얼마 전 LA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는 이 포스터를 보며, 어떻게든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낸 언더독같다는 생각이 들어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