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Q치킨을 갔다. 역시 Quality Control의 대가답게 여기서도 바삭한 튀김옷과 올리브 오일의 향긋함이 살아있다. 그런데 같이 간 친구의 반응은 다르다. Kentucky Fried Chicekn을 연상케 한다. 물론 기름이 훨씬 좋은 건 알겠는데 자기는 교촌이 더 맛있다고 한다. 꽤 인상깊은 장면 중 하나였는데 만약 내가 미국에서 치킨집을 차린다면 당연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황금올리브를 밀었을텐데 한국 치킨이 인기있는 이유는 확실히 양념인 것 같다. 물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봐야겠지만.
후라이드 치킨이 흑인들의 소울푸드이다보니 한국 치킨집을 많이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로 옆 테이블에 연이어 흑인 손님들이 찾는다. 하얀쌀밥을 사이드 디쉬로 시켜서 치킨이 나오기 전에 맨밥을 퍼먹고 있었다. 치킨은 우리처럼 여러개를 시켜서 쉐어해먹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작은 사이즈로 자신이 먹을 치킨을 시킨다.
먹고 나서는 타이거 슈가를 먹으러 갔다. 타이거 슈가가 있는 플라자는 한국 고깃집 두 곳과 포차 한 곳이 있었는데 다들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K-바베큐의 인기는 정말 상상 그 이상이다.
타이거 슈가에 있는 사람들의 인종 구성은 매우 다양했다. 밖에서 만났으면 말 못 걸었을 것 같은 험상궂게 생긴 아저씨도 타이거 슈가를 먹고 있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와 타이거 슈가를 주문하고 있었다.
음료를 시키며 같이 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놀라울 정도로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 어느 정도냐면 청룡 영화제에서 마마무가 축하무대에서 배우 이름을 넣어 부른 라이브를 알고 있고 한국에서는 배우들이 가수들을 낮게 본다는게 사실이냐는 질문을 할 정도였다. 효린이나 화사같이 한국에서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인기가 다른 아이돌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었고 비나 JYP의 약간은 촌스러운 구석들도 아주 잘 캐치해내고 있었다. 스탠포드를 졸업하고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친구였는데 이런 친구가 이렇게까지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고 잘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다. 한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하나의 재밌는 콘텐츠로 소비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한 국가의 문화가 이렇게 대중들에게 열렬히 소비되었던 적이 있는가하면 과거 80~90년대 일본 문화가 인기를 끌었을 때 제외하고는 없는 것 같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내가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한국이 대화 주제에 오르는 경우들이 많았고, 별로 한국의 대중문화에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던 나보다 그들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때가 많았다. 실로 놀라운 경험이다. 이 친구는 술게임을 해보고 싶다고 해서 다음에 사람을 모아 술게임을 해도 어색하지 않은 포차에 가서 하자고 해서, 이 나이에 술게임을 하게 생겼다.
사격장을 다녀왔다. 동네 외곽 교도소 옆에 있는 사격장이었다. 정말 예비군 훈련 하루동안 전 인원이 쏘는 곳보다 많은 양의 총알을 사람들이 쏘고 있었다. 배틀 그라운드의 훈련장같은 느낌이었다. 걸려있는 표적도 우리가 흔히 쓰는 종이 표적지랑 금속물이 줄에 걸려있는데 게임 속 훈련장과 유사했다. Rifle, Pistol, Shotgun 존으로 나뉘어있는데 보면서 미국은 정말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그것이 총일지라도. Rifle을 쏘는 사람 중에는 딱봐도 전문적이어보이는 풍향계와 조준경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 엄청 많았다. 두 사람이 짝을 이루어 방금 쏜 총알이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 의견을 나누며 영점을 잡아가는데 진짜 덕 중에 덕은 양덕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아 그리고 당연하게도 여기서는 탄피같은 것은 줍지 않는다. 주워가면 총알 살 때 할인한다고 해서 일부 부지런한 사람들만 탄피를 담고 있었다.
권총을 처음 쏴봤는데 처음에는 표적 근처로도 못 보냈다. 나중에 조금 익숙해지자 간혹가다 한 발씩 맞히기는 했는데 다루기 정말 어렵다. 누가 권총 들고 위협할 때 빠르게 도망가면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많이 쏴보는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며 한국군 한 명이 한 해동안 쏘는 총알의 양을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다. 무슨 일만 하면 물량으로 밀어붙여 못하는 사람도 잘하게 만드는 미국식 모델에 모든 것이 부족한 한국이 따라가기 위해서는 한국의 효율 중심 문화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총을 써보니 총도 비싼게 좋다는게 느껴졌다. Scar나 글록같은 명품이라 불리는 총은 그립감이나 무게중심이 확연히 다르다.
사격을 마치고서 근처에 있는 세븐 일레븐에 들러 핫도그를 먹었다. 빵을 꺼내어 자신이 원하는 토핑을 알아서 뿌려서 먹는 시스템이었다. 동생이 세븐 일레븐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어 편의점 즉석식품의 위생 수준을 잘 알고 있는데 과연 한국과 미국 중에서 어느 곳이 더 잘 관리되고 있을지 궁금했따. 이 곳 직원들의 직업 윤리 수준을 생각했을 때 위생 수준이 열악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식품 안전과 관련해 좀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개인의 일탈을 막는 장치가 더 철저할 것이라는 점에서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이 든 픽업 트럭의 트렁크에서 세븐일레븐의 소시지를 먹고 있는 모습이 뭔가 미국적 상징의 조합들같아 재밌었다.
이전에 친해진 중국인 친구가 자신의 DJ 데뷔 공연에 초대해줬다. 작년에 디제잉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벌써 돈 받고 공연을 하는 이 친구의 추진력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또한 이런 아마추어에게도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는 점도 부러웠다. 이 친구의 디제잉 세션이 끝나고 다른 밴드가 올라와 공연을 하는데, 별로 실력이 좋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potify에 음원을 올리고 자신의 앨범과 굿즈를 팔고 있었다. 잘 팔고 있겠냐마는 마치 온갖 풍향계와 스코프를 들고 자신의 라이플을 쏘고 있던 사람들처럼 이들도 아마추어지만 매우 진지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우리 선희>에 나오는 대사가 떠올랐다. 끝까지 파봐야 나를 알 수 있는건데, 여기서는 끝까지 파보기 좋다.
발렌타인데이였고 LGBTQ 어쩌고 하는 이벤트 차원에서 열린거라 주변에 게이, 레즈비언 커플들이 많이 보였다. BBQ에 같이 다녀온 친구도 여기서 만나게 된 게이커플이었다. 그 중 한 명은 아르메니아계 이란인이었다. LA의 Glendale이라는 지역이 있는데 그 곳에는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있다고 들었다. 한국에서는 잘 언급되지 않는 국가인데 여기서는 꽤 큰 이민자 집단을 구성하고 있어서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글렌데일 쪽에 있는 아르메니아인들의 소울푸드 식당을 추천받은 적 있어 이 친구에게 물어보니 거기는 아르메니아인이면 모를 수가 없는 곳이라 한다. 후무스가 맛있어보이던데 다음에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Instagram에서 한 공연의 광고를 보고 강력한 에센스를 느껴 티켓을 구매했다. 현대적인 컨트리음악을 하는 밴드였다. 이번에 컨트리 음악 앨범을 낸 비욘세를 두고 벌어진 일련의 논란을 흥미롭게 봤던터라 이 공연을 보면 좋은 Conversation Starter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초대받아 갔던 공연과 비슷하게 바에 있는 작은 무대에서 진행되는 공연이었다. 입장은 7시였는데 거의 8시가 되어 시작했다. 공연은 8시에 시작되었는데 오프닝이 거의40분 정도 되었다. 오프닝을 맡은 가수는 좀 더 전형적인 컨트리 음악을 들려줬다. 캐나다 출신이라는데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컨트리 음악 가수 특유의 목을 긁는 소리를 내며 노래를 불렀다. 처음에는 신났는데 조금 듣다보니 다 그 노래가 그 노래 같아 지겨웠다. 이제 끝낼만도 되었는데 싶었을 쯤 마지막 곡을 부르고 내려갔다.
이제 본 공연이 시작되는데, 아주 훌륭했다.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 중 하나가 얼마나 문제에 대해 얼마나 다양한 접근 방법을 보유하고 있는지인데 컨트리 음악임에도 그 변주의 폭이 훨씬 넓고 다양했다. 앞선 오프닝에서 느꼈던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변주의 컨트리 음악을 들려줬고 일부는 컨트리 음악으로 규정하기 애매할 정도로 세련되고 현대적인 사운드를 들려줬다. 거의 슈게이징스럽기까지 했다.
밴드의 실력도 탁월했는데 좋은 밴드들은 다 가진 절로 흥이 나고 심취하게 만드는 연주 실력을 갖고 있었다. 중간에 하나의 마이크를 두고 드럼을 제외한 밴드 멤버들이 모여 화음을 넣으며 부르는 노래가 있었는데 그 이미지가 하나의 포스터같았다.
정말 바에 사람이 꽉찰 정도로 많이 모였는데 그 모습을 보며 이번이 LA에서의 두 번째 공연인데 첫 공연 때는 한 5명 정도밖에 없었다며 다들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했다. 충분히 그럴만한 밴드였다.
공연이 끝나고 밖에 나가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언젠가 너 그래미 탈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진심이었다. 이 말은 안 전했지만 관상도 프레디 머큐리 관상이다. 이 친구가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면서 나에게도 질문하는데 그 질문을 듣고 더욱 더 이 친구의 성공을 확신했다. 어떻게 우리를 알게 되었냐고 물어보는데, 아 역시 잘하는 사람들은 고객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한다. 인스타그램으로 알게 되었다고 하니 매니저가 좋아하겠다며 고맙다고 했다. 티켓값이 $20이었는데 두 배를 내고 들었어도 아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훌륭한 공연이었다.
트레이더 조 김밥이 유행을 타자 H마트에도 냉동김밥이 들어왔다. 들어온지는 꽤 된 것 같은데 비건 김밥이어서 볼 때마다 타겟을 잘 설정했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기회가 되어 사먹었는데 단무지가 없다. 이걸 김밥이라 할 수 있나 싶다가도 트렌드에 빠르게 편승해 어쨌든 김밥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이들의 재빠른 의사결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LA 남쪽에 있는 테메큘라라는 와이너리에 다녀왔다. 나파밸리는 멀어서 못 가봤고 이전에 산타 바바라 쪽에 있는 와이너리에 간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있어 큰 기대는 안했다. 여러 와이너리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는 윌슨 크릭 와이너리로 향했다. 나는 일찍 가서 괜찮았는데 점심 시간이 지나니 주차장이 꽉 차있었다. 주차장을 지나 입구로 들어가면 야외 테이블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고 각자 와인과 그 주변에서 파는 음식들을 먹고 있는데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이 차올랐다. 너무 잘 기획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많지만 북적이지 않는 적절한 공간과 햇살, 기온 등이 훌륭한 경험을 제공해주고 있었다. 숨이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이 점에서 와이너리는 꽉꽉 찬 공간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이 정말 좋아할 공간인데 한국에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도는 기후에 안 맞을테니, 한국의 과수원을 이런 식으로 기획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 댁에 있는 매실 나무 밭에서 매화주를 마시며 매화꽃 구경하기같은.
이전에 미국에서 소비를 하며 느낀 점으로 소비를 위해 필요한 부정적 경험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긍정적인 경험을 강화한다고 이야기한 적 있다. 와이너리가 대표적이다. 공간, 동선 등이 아주 잘 기획되어 있고 사람들이 와이너리에 갖고 있는 이미지와 로망을 잘 투영되어 있다. 한국의 과수원을 간다고 하면 탁 트인 경관을 즐기고 싱싱한 과일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긍정적 기대가 있는 동시에 여기서 나오는 상품들은 6시 내고향스러울 것 같다는 회의적인 마음을 지우기 어렵다. 만약 과수원에 식당이 있다고 할 때, 사과 백숙같은 것을 팔 것 같지 애플 파이를 팔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
소비자의 부정적 경험을 줄이고 긍정적인 경험을 강화하는 일은 꽤나 마인드풀니스함이 필요한 일인 것 같다. 정말 똑똑해서 분석과 데이터로 이를 발견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떤 형태로든 정확히 알아내는 것은 어려우니 일단 내 마음이 무엇에 동하고 무엇에 불편한지를 관찰하는데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래서 돈 잘 버는 사람들은 너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만 남긴 것이 사람들이 사고 싶어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컨트리 음악과 와이너리에서 이 점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나의 삶의 낙은 무엇일까하는 고민을 많이 한다. 요즘 내 마음 속의 감정이 잘 안 느껴진다. 마치 많은 당을 섭취하고나면 인슐린이 과분비되어 혈당을 억누르는 것처럼, 감정적 동요가 억눌려 있는 느낌이다. 무심함이 너무 괴롭다. 얼른 이 잔잔함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모던 보빙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던 보빙사 EP23 - Mulholland Drive (3) | 2024.04.18 |
---|---|
모던 보빙사 EP22 - Seoul Tofu's back (6) | 2024.03.27 |
모던 보빙사 EP 20 - 실버레이크 (7) | 2024.02.14 |
모던 보빙사 EP19 - American Dream (7) | 2024.01.26 |
모던 보빙사 EP18 - 옅어질 용기 (2) | 2024.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