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보빙사

모던 보빙사 EP26 - 헤어질 결심

버드나무맨 2024. 6. 16. 14:09

차를 사고 나서 우버를 많이 타지는 않지만 최근에 술을 마실 일이 있어 우버를 타게 되었다. 그냥 타고올 떄도 있지만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같으면 인사를 나누면서 영어 연습도 할겸 대화를 나눈다. 짧은 시간 안에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있는 주제를 던지는 것이 중요한데 식당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면 바로 눈빛과 목소리가 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미국에서 사업에 대해 이야기를 좋은 점이 사람들이 사업 초기의 험난한 시절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미디어에서 사업가의 이야기가 많이 다뤄져서 그러는지 팝업을 열고, 주차장을 빌려 뭔가 해보고 있다고 이런 이야기하면 그게 맞는 길이라며 자기가 아는 다른 사업가 중에 그렇게 시작한 사람들 이야기를 줄줄 해준다. 식당 창업 하려고 하냐, 공부 열심히 하지, 벌기 쉽지 않다 같은 소리없이 바로 그런 이야기로 시작할 있어 대화하는 맛이 난다.

 

날도 우버를 타니 타기 전에 있던 사람들이 친구들이냐고 묻길래 사업하는 사람이라며 나도 준비하고 있다며 대화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자신이 아는 식당 창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아주 나와 생각의 결이 비슷했다. 맥도날드가 커졌을지 몰라도 더이상 맥도날드를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는다며 아직도 핵심가치를 유지하는 인앤아웃이 좋은 회사라 생각한다는 이야기, 시작은 작게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 등등 사업과 관련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열심히 나눴다. 그러면서 자신이 최근에 들린 정말 잘한다고 생각한 식당을 추천해줬다. 어떻게 식당을 알게 되었냐고 하니 자기는 운전을 하다보니 지나가다가 흥미로운 곳이 보이면 들린다는 한국의 기사님들과 비슷한 행동패턴을 알려주기도 했고 승객이 추천해줘서 가보기도 한다고 이야기했다. 들어가기 구글 리뷰를 보는데 서비스와 관련한 부분을 특히 신경쓴다고, 자신은 식당은 그냥 파는 것이 아니라 환대받는 곳의 느낌이 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음식에 관심이 많은 분이길래 다음에 내가 팝업을 열면 초대해주겠다는 약속을 하며 연락처를 교환했다.

 

그러고 다음날 분이 추천해준 버거가게, 스톰버거를 들렀다. 지점이 여러 있는 알았는데 잉글우드에만 있어서 한인타운에서 약속을 마치고 가기 애매했는데 그래도 분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에 잉글우드로 향했다. 잉글우드 쪽은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가본 없어서 정말 낯선 동네였는데 동네에 사는 인구 구성을 반영하는 거리에 있는 빌보드판에 실린 모델의 인종이 내가 사는 동네와 다르다. 도로변을 지나 가다보니 파란색의 깔끔한 간판이 서있었다. 세련된 간판을 따라 드라이브 스루 라인에 차를 대고 메뉴를 보는데 메뉴판도 인앤아웃만큼이나 깔끔하다. 다만 어니언링이 사이드 메뉴로 있었고 가지 소스를 추가하여 구매할 있었으며 최근에 치킨 샌드위치가 추가된 같았다.

 

주문받는 분도 굉장히 친절했다. 근육질의 건장한 남성이어서 약간의 호전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매우 다정한 말투로 주문을 받았다. 클래식 버거 콤보에 밀크쉐이크로 변경하고, 곳의 대표 소스인 스톰 소스와 살구가 들어간 매콤한 소스를 추가했다.

 

음식이 나오는 창구에서 메뉴를 받는데 음식을 건네주는 분도 친절했다. 음식을 건네받는 아주 짧은 순간의 찰나에도 친절함과 다정함이 느껴지는 인사말을 건네받았다. 음식이 봉투와 밀크쉐이크를 받고 주차장에 차를 대며 밀크쉐이크를 먼저 마셔보는데 나온다. 때부터 느낌이 좋았다. 여기는 진짜 꾸덕한 밀크쉐이크를 파는구나. 밀크쉐이크 주문할 바닐라, 초코, 섞어서 옵션이 있었는데 "섞어서" 옵션같이 추가로 수고가 들어가는 옵션을 제공한다는 점은 일단 좋은 시그널임을 다시 확인했다.

 

버거는 은박지에 쌓여있었다. 속이 보이지 않게 은박지로 둘러쌓인 버거의 포장을 뜯으며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긴장감과 기대감이 올라갔다. 버거와 마주하는 순간, 바로 느낄 있었다. 일단 버거 번이 대충 만든 버거번의 질고 둔탁한 느낌없이 가볍고 폭신한 번이었으며, 아주 적절하게 기름이 둘러있어 탐스럽고도 고혹스러운 갈색빛을 띠고 있었다. 베어무는 순간 마치 다른 차원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마냥 놀라운 아삭함이 폭풍처럼 몰아닥쳤다. 아니, 피클이 싱싱할 있구나. 인앤아웃을 처음 먹었을 다른 것보다 안에 토마토와 양상추의 신선함이 인상적이었는데 곳은 인상적인 수준을 넘어섰다. 양상추와 피클의 신선함이 휘몰아치듯 느껴진다. 그동안 버거를 먹으며 패티만 신경썼는데 곳은 패티는 기본이고 우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다른 재료들에서도 디테일의 차원이 달랐다. 양상추와 피클조차 정도인데 패티는 어땠겠는가.

 

 

버거는 형식이 완고한 음식이다보니 있는 맛에 있어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계를 넘어서는 맛이었다. 내가 그동안 버거를 몰랐구나하는 생각과 곳에서 무급인턴으로 일할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경이로운 맛이었다.

 

그리고 소스는 정말 훌륭했다. Apricot 어쩌고 저쩌고 있을 , 과일향 대충 첨가해놓고 과일맛이다 어쩌겠다 싶은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짧았다. 이렇게 훌륭하게 당을 활용할 있다니. 정말 소스와 버거 모두 사람들이 당겨하는 맛이 무엇인지를 너무나 아는 사람이 디자인한 맛이었다.

 

그리고 함께 시킨 감자튀김. 감자튀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음에도 이곳의 감자튀김은 싹싹 비웠다. 총알터지듯 바삭한 맛이었다. 도대체 감자를 얼마나 극한까지 몰아붙여야 이런 바삭함이 나오는 것인지, 한계를 뛰어넘는 시간을 견뎌낸 감자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는 맛이었다. 차에서 먹다가 감자튀김 조각이 의자의 빈틈으로 빠졌는데 만마일을 함께한 나의 동반자 캠리에게 미운 마음이 들게 만드는 탐욕스럽고 이성을 놓게 만드는 맛이었다.

 

둘이 먹어도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 자체였다. 정말 총맞아 죽을 수도 있는 동네라는 것을 알고도 기꺼이 버거를 먹으러 찾아올 같았다. 표현을 생각한 순간, 밖에서 불꽃소리인지 총소리인지 없는 타다닥거리는 소리가 들려 말을 아꼈다. 그런데 정말 경국지색이 나라를 위험하게 만드는 미모라면, 식당의 맛은 동네를 살리는 맛이다. 지역재생이 별건가, 이렇게 맛있는 식당이 있으면 사람들이 찾아오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많아지면 지역이 살아나는거지.

 

버거, 소스, 감자튀김, 밀크쉐이크 각각이 있는 최상의 맛을 내고 있어 비인간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상상 속의 버거플레이스를 것만 같았다. 감동을 있는 그대로 남기고 싶어 보이스메모를 기록을 남기고 다음 바로 글로 옮길 정도로 훌륭한 맛이었다. 혹시라도 LA 일이 있다면 Storm Burger 찾아가보시기를! 하게될 것이다. In-n-out과 헤어질 결심을.

 

5 메모리얼 연휴를 맞아 요세미티를 다녀왔다.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 그리고 지금 위스콘신에서 유학하고 있는 친구와 같이 연휴를 보내기로 했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부터 서로 같이 논의하지 않고도 서로의 관심사가 겹쳐 나중에 모임이나 동아리에서 만나게 되어 서로 신기하다고 이야기하는, 정말 마음이 맞는 친구였는데 놀랍게도 미국으로 건너오는 것도 비슷한 시기에 이뤄졌다. 서울에서 부산보다도 배로 거리에 있지만 그래도 보자는 말을 했는데 이번 연휴에 친구가 LA 놀러오면서 만날 있었다.

 

계획을 짜다가 요세미티를 가기로 했다. 이번에 가면 번째 가는 요세미티이기에 약간 꺼려지기도 했는데 멀리서 친구를 위해 요세미티를 가기로 정했다. 대신 이번에는 연휴를 끼고가는만큼 요세미티의 트레일 코스를 걸어보기로 했다. 코스를 찾아보며 여러 글을 읽어보니 요세미티 공원 안에서 묵을 있는 방법이 가지 있었다. 스티브잡스가 결혼한 호텔과 요세미티 롯지만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숙박 옵션이 다양하고 가격도 합리적이었다. 당연히 연휴기간이니 예약이 차있었는데 일주일 전에 취소되는 자리를 구할 있다고 하여 열심히 사이트를 들락거렸고 아주 운이 좋게 요세미티 안에 있는 캠핑장을 구할 있었다. 캠핑장인데 막사같은 있는 공간이 제공되고 요세미티 안에서 불을 피울 있는 되는 캠핑장이었다.

 

 

공항에서 친구를 픽업하고 인앤아웃버거를 먹으며 여행을 시작했다. 거의 1년만에 만나는 자리였는데 사이 있었던 경험과 했던 생각들은 더욱 비슷해져있었다. 평행이론이라는 생각이 정도로 닮게 서로의 경험과 생각에 6시간 가까이 걸리는 운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요세미티를 들어서며 애플 OS 이름 중에 요세미티와 다른 캘리포니아 지명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Sierra 외에 다른 버전들의 이름이 떠올라 한참을 고민했는데 인터넷이 터져 찾을 방법이 없었다. 한참 뒤에야 Big Sur 떠올리면서 그와 비슷한 다른 이름들도 더올랐고 꿈에서 Sonoma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나중에 인터넷이 터지는 곳에서 찾아보며 익숙했던 이름을 재차 확인할 있었다. 고등학교 시험 나왔던 내용이라서 떠올리고 싶어했다.

 

해가 지기 5 전에 도착했다. 바로 옆에 강이 흐르는 캠핑장이었다. 밤에 강가 옆에 있는 그루터기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는데 무수히 많은 별과 나무 향기, 물소리가 어울러져 세상의 번잡함이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저녁은 미리 Hmart에서 구매해놓은 삼겹살과 지난 삼겹살 이벤트에서 남은 야채 그리고 복분자주와 산사춘을 가져갔다. 매점이 문이 닫기 직전 불을 피울 것을 찾다가 내가 아는 고체 연료가 없길래 그냥 Youtube에서 것처럼 과자를 태워서 불을 붙여야지 했는데 불이 붙어 애를 먹었다. 숙소에서 고체 연료를 하나 빌리고 불이 붙는가 싶더니 사그라들었는데 다시 물어보기 머쓱해서 멀리 있는 숙소에서 액체연료를 빌려와 불을 붙였다. 진작 빌릴 , 사이 태워먹은 과자와 냅킨이 뭉치는 되었다. 마침내 불을 붙여 삼겹살과 미나리를 굽고 이번에 구매한 캠핑 장비 (특히 기대했던) 캠핑 나이프로 생수병을 잘라 컵을 만들어 복분자를 따랐다. 마시자마자 감탄했다. 곳에서 복분자가 아닌 다른 술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절묘한 맛이었다. 6시간의 운전과 불을 붙이는 고생을 싸악 잊게 만드는 적당한 달콤함이 흥을 절로 돋구었다. 비록 찬물로 씻지못해 준비해간 비빔면은 불어터져 거의 먹게 되었지만 삼겹살과 미나리, 깻잎과 복분자주는 삶의 의욕을 드높여주는 맛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강가에 캠핑의자를 펼쳐놓고 정말 좋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다음 날의 일정을 준비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한국 식품회사의 대표 아이템 가지, 라면과 믹스커피로 식사를 마치고 셔틀을 타러 출발했다. 다행히 시간이 딱딱 맞아떨어져 셔틀을 바로 있었다. 중간에 화장실을 들리기 위해 스티브 잡스가 결혼식을 올린 호텔도 이용할 있었다. 우연히 곳에 들리게 되었는데 호텔 로비에 화장실을 비롯해 편의시설이 여러가지 있어 다음에 요세미티를 와도 여기를 들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요세미티에서는 어느 때보다 수량이 많았다. 즈음이 요세미티에 물이 가장 많을 때라고 하는데 폭포나 강이나 물이 철철 흘러 보는 맛이 있었다. 우리는 4mile+ 파노라마 트레일을 가기로 했는데, 요세미티 밸리에서 출발하여 4mile 정도 걸어 요세미티의 Glacier Point 찍고 거기서 6~7시간 걸리는 파노라마 트레일이 시작되었다. 항상 차로만 가던 Glacier Point였는데 이번에는 걸어서 등반을 하게 되었다.

 

4mile 코스는 요세미티 폭포를 마주하고 능선을 따라 올라가는 코스였는데 능선을 따라가다보니 올라가기 전까지는 하나의 모습만 있어 약간은 지루하기도 했다. 중간에 Hmart에서 슈크림 소보루빵을 먹는데, 예전에 농활을 가서 먹었던 새참이 생각나는 맛이었다. 노동이 씻겨나가는 . 중간중간 가방을 바꿔가며 올라갔고 올라가다보니 아직 녹은 눈도 있었다. 자크 루소, Bigness, 이너게임 등의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Glacier Point 도착했다. 사실 Glacier Point 도착하기 바로 , 정상이 가까이 있는 모르고 우리 거의 동시에 준비해갔던 약과 먹고 쉬자고 해서 약과를 먹으며 잠깐 쉬었는데 5분도 정상이 나와서 무안했다. 요세미티의 침엽수림 아래서 약과에 잣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푹빠져 약과를 먹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행에 가져갔던 음식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상황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어서 여행의 흥을 적절히 돋아주웠다. 상황에서 약과가 아닌 다른 음식을 떠올리기 어려운 맛이었다.

Glacier Point에서 물을 사고 (하나만 사려던 것을 샀는데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Half Dome 앞에서 사진을 찍고 파노라마 트레일을 시작했는데 정말 곳은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그동안 내가 요세미티의 아주 일부분만 봐왔구나는 생각이 정도로 놀라운 대자연의 풍경이 펼쳐졌다. 니체가 앉아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바위와 비슷하게 생긴 바위를 지나고 요세미티의 전경이 보이는 골짜기 위에 앉아 쉬기도 하며 독수리와 양의 이야기, 홍상수와 봉준호, 하마구치 류스케, A24 웨스 앤더슨, 정성일의 영화적 윤리, 막스 베버의 카리스마, 대통령 후보의 역사적 필연성, 나경원과 이준석 세상 만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조물주가 우리의 대화를 듣는다면, 이게 곳에서 나올 일이 없는데 하며 디버깅을 시작할 정도로 대화의 주제는 다채롭고 끝이 없었다. 이렇게 세상의 다양한 것들에 대해 같은 뜻으로 논할 있는 친구가 있다는 점에서 축복받은 삶이라는 생각이 들며, 이것이 삶에 있어서 정말 소중한 것이었음을 다시 느꼈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있는 여행이었다.

 

길을 걷다 문득 뒤를 돌아봤을 , 시냇물이 산등성이 너머에서 비추는 햇살에 반짝이며 초록색 풀잎 사이를 평화롭게 흘러가는 풍경을 보았는데 세상이 아닌 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삶의 의욕이 샘솟는 순간이었다.

 

 

 

 

산행은 12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아름다운 풍경을 봤으니 그만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산은 쉽게 놓아주지 않아서 해가 때쯤 되어서야 도착했다. 둘째날은 요세미티 입구 쪽에 있는 호텔을 잡아놓은터라 시간 가량 이동을 해야하는데 요세미티 안에서 식사를 하고 이동하기로 했다. 커리 빌리지에 있는 피자를 시켰는데, 이건 산행이 아니었어도 맛있을 맛이었다. 하프돔과 다른 이름의 피자였는데 피자가 요세미티 여행에서 추천으로 뜨는지 의문스러울정도로 훌륭한 맛이었다. 근방에 늦게까지 여는 식당이 곳밖에 없어서 거의 시간가량을 기다려야했지만 기다릴만한 맛이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이제 정말 요세미티를 제대로 알게 느낌이었다. 이렇게 시간을 요세미티에 할애할 있는 시공간적 상황과 산행동안 함께 나눌 이야기 나눌 있는 뜻이 맞는 동반자,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져야지만 누릴 있는 호사였기에 경험이 너무나 값지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2 가까이 LA 놀러온 친구와 다음 마지막 일정은 말리부에서 보냈다. 역시 차로 한참 들어가야지만 나오는 외딴 곳에 있었다. RV 만들어진 숙소였는데 위치가 기가막혔다. 높은 산에서 말리부 바다가 눈에 들어오는 놀라운 풍경이 있는 숙소였다.  날은 백세주를 마셨는데 화로에 불을 켜놓고 백세주와 청포도, 그리고 Ruins of Athens 듣는 아주 호화로운 경험이었다.

 

번의 여행지가 너무나도 조화롭고 만족스러워, 산과 바다, 헤어질 결심 코스로 이름붙이기로했다.

 

LA에서 사업을 운영하고 계신 분을 만났다. 지금 개저씨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넥슨" 출신 중 한 분이었다. 넥슨 출신으로 승승장구하시던 분이었고 그 분도 내가 내가 존경하는 대표님께 조언을 들었던 것처럼 김정주 회장의 조언으로 미국행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8년 전에 미국에 오게 되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잘한 선택 중 하나라며 나의 결정 중 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라 격려해주고 응원해주셨다.

 

어떻게 이 분을 만나게 되었는가 하면 정말 Serendipity 그 자체였다. 지금 한국에서 내 프로젝트를 도와주고 있는 형이, 참여하고 다른 프로젝트에서 한 분이 LA에 출장을 오시게 되어 한 번 만나보라고 자리를 만들어줬다. 무슨 접점이 있을까 긴가민가하는 마음으로 자리에 나갔는데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해 이제 기반을 옮기기 어려운 그 분의 나의 "도전"(이라 이름 붙이기 부끄러운..")을 보며 많은 자극을 받았다고 하셨고 나는 이미 사업을 일궈내신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가야하는 스텝들을 다시금 새겨볼 수 있었다. 

 

그 분이 한국에 돌아가시면서 내가 가장 힘들다고 한, 디스커션 파트너에 대한 고민을 해결해주겠다며 같이 이야기나눌만한 사람을 소개해주겠다고 하셨다. 만약 이 과정을 내가 계획하고 설계했다면 절대 이뤄질 수 없었던 만남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분과의 대화 주제도 Serendipity의 연속이었다. 넥슨 출신답게 게임도 관심이 있으셨지만 게임을 넘어 사람들이 즐기는 엔터테인먼트 전반에 아주 다양하게 관심이 있는 분이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축구 선수 황인범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신명나게 나눌 수 있었다. 나의 관심사들이 종잡을 수 없이 퍼져나갈 때마다 도대체 이 병과도 같은 호기심은 언제쯤 사그라들까 고민했는데 이러한 경험을 몇 번 반복하며 이제는 이런 나를 받아들이려고 한다. 

 

얼마 전 여기서 알게 된 친구의 소개로 한 파티에 갔는데 혼자 가서 약간 뻘쭘하게 서있다가 저 쪽에 나같이 뻘쭘하게 서있는 사람이 있길래 가서 말을 걸었다. 무슨 일하느냐 이야기하는데 TV Production에서 작가로 일하며 쉴 때 시나리오를 쓴다고 한다. 오, 거기서부터 고래에다 히로카즈, 이창동, 드라이브마이카, 헤어질 결심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고 타란티노가 운영한다는 극장 이야기를 하며 원스어폰어타임인할리우드 어떻게 봤냐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졌다. 우리의 대화가 재밌어보였는지 다른 사람들도 한 두명씩 껴서 초반의 뻘쭘함이 상상이 안 될 정도로 능숙하게 대화를 주도해갔다. 이 친구랑은 인스타그램을 교환하며 나중에 좋은 영화나오면 서로 추천해주기로 약속했다. 이런 식으로 나의 관심사가 도움이 되는 경험을 몇 번 반복하며 앞으로도 왕성하게 호기심을 가지기로 다짐했다. 

 

소개받은 사업가 분을 통해 LA의 다른 사업가 분들도 소개받을 수 있었는데 다 넥슨 OB로 뭉쳐있던 분이었다. 정말 그 시기 넥슨의 위용과 회사 분위기를 짐작케하는 무용담을 들을 수 있었다. 정말 그 시절 넥슨은 뭔가 달랐던 회사였다. 복사기가 한 대밖에 없어 서로 복사하기 전에 누가 복사한다고 큰 소리로 외치고 복사하던 이야기, 처음 면접 보러갔는데 이렇게 면접하시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더니 다음 날 출근하라고 이야기 들었다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또 이해할 수 있는 넥슨의 초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넥슨의 혼란스럽지만 쭉쭉 커가는 초기 시절을 겪어서인지 이 시절을 지낸 넥슨 멤버들은 우당탕탕, 주먹구구에 대한 열정과 리스펙이 있고 그런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도와주신다. 이 분들이 이야기 나눌 때 김정주를 김정주 아저씨라 부르며 참 많은 것을 알려준 분이었다고 회상하는 모습을 보며, 멋진 유산을 남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으로 오기 결정할 때 나도 많이 고민하고 불안했다. 어찌 되었든 헤어질 결심을 내렸는데, 그것이 맞는 결심이었다는 생각이 요즘 든다.